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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8.1)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8.1)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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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Alphonsus Maria de Liguori)
축일 8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설립자, 주교, 교회학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696-1787년
같은이름 알폰수스, 알퐁소, 알퐁수스
성인 기본정보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Alphonsus Maria a Ligorio, 또는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1696년 9월 27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Napoli) 근교 마리아넬라(Marianella)에서 주세페 데 리구오리(Giuseppe de Liguori)와 안나 카발리에리(Anna Cavalieri) 사이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으로 아버지 주세페는 나폴리 공국의 해군 장교이자 왕립 갤리선의 함장이었고 어머니는 나중에 트로이아(Troia)의 주교가 된 에밀리오 자코모 카발리에리(Emilio Giacomo Cavalieri)의 동생으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성 알폰소는 가정 교사들에게서 문학 · 수학 · 철학 · 음악 · 프랑스어 · 미술 등을 배웠으며,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0살 때 첫영성체를 하고 그 뒤로도 오라토리오회(Oratorium)의 파가노(Pagano) 신부에게 영적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1713년 불과 16살의 나이로 나폴리 대학교에서 민법과 교회법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촉망받는 변호사로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절대 패소하지 않는 변호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리고 사교계에 관여하면서 평소 그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기도와 신앙생활을 게을리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1723년 나폴리 공작 오르시니(Orsini)가 토스카나(Toscana) 대공을 상대로 막대한 금액에 해당하는 토지 소유권 관련 소송을 제기했을 때 성 알폰소는 오르시니 공작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소송은 승소하는 듯했으나 성 알폰소가 형식적인 문제에서 어느 조항을 간과하고 서명한 사실이 밝혀져 패소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스스로 자격이 상실되었다고 생각하고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기도하던 그는 1723년 8월 28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아갔다가 신비체험을 했다. 갑자기 빛이 그를 둘러싸더니 내면에서 “세속을 버리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살아라.”라는 음성이 두 번이나 들려왔다. 병원에서 나온 성 알폰소는 즉시 성당으로 가서 성모상 앞에서 장차 사제가 되어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성 알폰소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했고, 장자의 권리 또한 동생에게 양보하고 기도 생활에 헌신했다. 한동안 오라토리오회 입회를 반대하던 아버지도 그가 당시 관습대로 집에서 계속 생활한다는 조건으로 사제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렇게 해서 성 알폰소는 그해 10월 23일부터 집에서 율리오 토르니(Julio Torni)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신학을 공부하여 1726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2년 정도 나폴리 근방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설교와 고해성사에 주력하였다. 1729년 4월에 중국의 사도로 불리던 마테오 리파(Matteo Ripa) 신부가 나폴리에 선교사 양성 기관인 ‘중국 신학원’(Chinese College)을 설립하자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의 교목 신부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이곳에서 자기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 신부를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토마스 팔코이아 신부는 로마(Roma)에서 본 환시에 근거해 오랫동안 수도회 설립을 위해 노력해왔었다.

   1730년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 신부가 스칼라(Scala) 지방에 있는 카스텔라마레(Castellammare) 교구의 주교가 되자 성 알폰소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팔코이아 주교는 성 알폰소에게 수도회 설립에 관해 관심을 두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스칼라 수녀원에서 수녀들의 피정을 지도하던 성 알폰소는 복녀 마리아 셀레스테 크로스타로사(Maria Celeste Crostarosa, 9월 11일) 수녀를 만나 새로운 수도회 규칙에 대한 그녀의 환시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의 환시 내용이 20년 전 팔코이아 주교가 로마에서 경험한 환시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731년에 성 알폰소는 복녀 마리아 셀레스테 수녀가 환시 중에 받은 규칙을 따르는 여자 구속주회를 설립했고, 다음 해에 스칼라로 가서 팔코이아 주교와 파가노 신부와 다른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수도회인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Congregatio Sanctissimi Redemptoris, C.Ss.R.)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 말씀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성직 수도회였다. 그는 주로 교리 교육이나 영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던 나폴리 왕국의 가난한 농촌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스칼라 수녀회 한편에 수도회 본부를 마련했고, 팔코이아 주교를 명예 수도원장으로 모셨다. 성 알폰소는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수도회를 정립하고 규칙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수도회를 만드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나폴리 대주교는 물론 동료 수도자 일부와도 의견 충돌을 겪으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복녀 마리아 셀레스테 수녀도 그를 떠나 포자(Foggia)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고, 1733년 다른 남자 수도자들도 모두 떠나 새로운 수도회를 만들면서 성 알폰소와 쿠르시오(Vitus Curtius)라는 수도자 한 명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성 알폰소는 흔들리지 않고 수도회를 지키면서 다른 회원들을 맞이하여 1734년 1월 빌라 데글리 스키아비(Villa degli Schiavi)로 가서 선교 활동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두 번째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752년까지 성 알폰소는 나폴리 왕국 전역, 특히 소도시와 시골 마을을 두루 다니며 설교 활동을 펼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나폴리의 지배권을 되찾은 에스파냐와 일부 타락한 사제가 그가 소외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교 활동을 펼치며 평등주의와 같은 위험한 사상을 퍼뜨린다고 생각해 악의적인 소문으로 그의 공동체를 공격해 수도원 문을 닫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가며 수도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성 알폰소는 살레르노(Salerno)의 주교로부터 스칼라에 작은 집을 받아 수도회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다. 1743년 팔코이아 주교가 선종한 후 수도회 총회에서 성 알폰소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수도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마침내 구속주회는 1749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로부터 인가를 받았고, 같은 해에 열린 총회에서 그는 수도회 종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다음 해에 여자 구속주회도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왕권주의를 내세워 수도회들을 적대시하던 왕과 타누치(Tanucci) 후작의 방해로 나폴리 왕국의 인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752년 12월 9일, 나폴리 왕은 교황령과 시칠리아(Sicilia)만을 사목 활동 영역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구속주회에 대한 인가를 승인했다.

   성 알폰소는 일생을 시골 지역과 작은 마을을 직접 다니며 설교 사도직에 헌신하면서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였다. 1748년에는 나폴리에서 그의 대표작인 “윤리신학”(Theologia moralis) 초판을 출판하였다. 그는 체계적인 윤리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지만,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윤리, 신학, 사목, 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1762년 6월 20일 성 알폰소를 나폴리 왕국 베네벤토(Benevento) 지역의 작은 교구인 산타가타 데이 고티(Sant’Agata dei Goti)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이 교구에는 그 당시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3만 명 정도의 주민들과 400여 명의 불성실한 사제들, 그리고 17개 정도의 규율이 느슨한 수도원들이 있었다. 이 교구를 돌보는 13년 동안 성 알폰소는 눈물로 기도하며 성직자, 수도원, 교구 전체의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1764년 기근에 이어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그는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또한 각별한 성체 신심을 갖고 성체조배를 장려했는데, 특히 수도원에서 성체조배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 알폰소는 이런 열정적 활동으로 인해 중병을 얻었고, 또 죽을 때까지 괴롭혀온 류머티즘으로 하반신이 마비될 때가 많아 앉아서 미사를 집전해야 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주교직에서 사임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1776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허락을 받고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주교직을 사임한 후에도 그는 구속주회를 바로 세우고 운영하기 위해 주력하였다. 하지만 나폴리 왕국 당국자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예수회가 박해를 받은 이후 구속주회도 위험에 처하자 성 알폰소는 중개자를 내세워 당국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왕이 승인한 규칙과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수도회를 인가한 교서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교황령 외의 지역에 있던 공동체들이 성 알폰소의 관할권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수도회는 두 계열로 분열되었다. 성 알폰소는 둘로 분열된 수도회가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787년 8월 1일 살레르노의 노체라 데이 파가니(Nocera dei Pagani) 수도원에서 선종해 그곳 성당에 안장되었다. 구속주회는 성 알폰소가 선종하고 6년 뒤에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성 알폰소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복자 비오 9세는 1871년 3월 23일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며 ‘가장 열정적인 박사’(Doctor zelantissimus)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는 그를 고해성사 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그의 축일은 8월 2일에 지내오다가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선종한 날인 8월 1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일 목록에서 노체라 데이 파가니에서 산타가타 데이 고티의 주교이자 구속주회 설립자인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를 기념하는데, 그는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과 저술과 설교 그리고 모범적인 삶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1839년 선종 52년 만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성인 목록에 등재되었으며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보편 교회의 박사로 선포되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일 목록에서 그날이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의 기념일이며, 그가 교회 박사로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저술, 언행과 모범을 통해 빛을 발했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파하기 위해 설교에 헌신하며 특별히 윤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인 남긴 저서를 집필했다고 했다.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구속주회를 설립했고, 산타가타 데이 고티의 주교로 선출된 후에도 변함없이 헌신적으로 사목했으나 15년 후 병에 걸려 주교직을 내려놓고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노체라 데이 파가니에서 큰 희생과 고난 속에 여생을 보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교복을 입은 모습이나 검은색 구속주회 수도복을 입고 십자가나 묵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종종 지병으로 인해 몸이 굽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탈리아어로는 그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o Maria de Liguori)로 표기한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35-139쪽.
  •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저, 이종훈 역, 정현옥 그림, 영원한 기쁨 - 알폰소 성인의 거룩한 묵상, 서울(바오로딸), 2004년.
  • 양승국 저, 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 서울(생활성서), 2018년, 92-99쪽.
  • 요셉 봐이스마이어 외 저, 전헌호 역, 교회 영성을 빛낸 수도회 창설자: 근세후기와 현대교회 -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와 구속주 수도회', 서울(가톨릭출판사), 2002년, 17-46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서울(으뜸사랑), 2014년, 219-224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알퐁소 마리아 리고리오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327-332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870-5871쪽.
  •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편역, 수도생활 역사 III - '구속주회', 서울(성바오로), 2005년, 242-251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89-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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