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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스토키움(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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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에우스토키움 (Eustochium)
축일 9월 28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베들레헴(Bethlehem)
활동연도 +419년경
같은이름 에우스또치움, 에우스또키움, 에우스토치움
성인 기본정보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368년경 로마 원로원 의원인 톡소티우스(Toxotius)와 성녀 바울라(Paula, 1월 26일)의 딸로 태어나 에우스토키움 율리아(Eustochium Julia)라는 이름을 얻었다. 379년경 아버지가 사망한 후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는 어머니를 도왔다. 로마에서 사막의 은수자들처럼 살던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382년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가 로마에 왔을 때 어머니와 함께 그를 영적 지도자로 모시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의 친척은 젊은 나이에 엄격한 생활보다는 세상의 쾌락을 즐기라고 설득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384년경 평생 동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했는데, 그녀의 갸륵한 행동에 감탄한 성 예로니모는 “동정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De custodia virginitatis)라는 유명한 편지를 보냈다.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 교황이 선종한 뒤에 성 예로니모는 로마를 떠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다. 384년경 언니인 블레실라(Blaesilla)가 세상을 떠나자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어머니와 동료들을 따라 영적 스승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났다. 그들은 팔레스티나를 순례하고 386년에 성 예로니모와 함께 이집트로 가서 니트리아(Nitria) 사막의 은수자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 방식을 연구한 후 팔레스티나로 돌아와 베들레헴에 정착해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귀족 부인이었던 성녀 바울라는 자신의 재산으로 성 예로니모를 도와 베들레헴에 세 개의 남자 수도원과 한 개의 여자 수도원을 세우는 데 경제적 뒷받침을 했다. 그리고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어머니와 함께 성 예로니모의 성경 번역을 여러 면에서 도왔다. 특히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 그리고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었던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성 예로니모의 성경 번역 작업에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성 예로니모가 설립한 새로운 수도 공동체를 지도하는 어머니를 도왔고, 404년 어머니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후에는 수녀원의 원장직을 맡았다.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수녀원장으로서 어머니의 아낌없는 자선으로 인해 생긴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성 예로니모는 따뜻한 격려와 조언으로 그녀에게 힘을 보탰다. 그녀는 수녀원 개혁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417년 폭도들의 무리가 베들레헴 수도원에 쳐들어와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고 심지어 수녀 여럿을 살해하고 수도원을 파괴한 뒤로는 다시 수녀원을 일으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인 419년경 성녀 에우스토키움은 베들레헴에서 눈을 감았다. 생전에 그녀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낸 성 예로니모의 글에 따르면, 그녀는 작은 육체에 큰 덕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28일 목록에서 어머니와 함께 로마를 떠나 주님의 탄생 현장에 와서 스승인 성 예로니모의 조언에 따라 충실한 삶을 산 성녀 에우스토키움 동정녀에 대해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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