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광헌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경기도 광주(廣州) 이씨 집안사람으로 양반대가의 후예이다. 그와 같은 해에 순교한 이광렬 요한은 동생이고, 권희 바르바라(Barbara)는 부인이며, 17세의 나이로 순교한 이 아가타(Agatha)는 딸이다. 그의 성격은 너그러웠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지만 쾌락을 좋아하고 절제함이 부족하여 젊어서 한때는 유흥장에 드나들며 다소 방탕하게 살았다고 한다. 30세가 채 못 되던 해에야 비로소 천주교에 입문하여 그의 부인 권희와 함께 입교하고, 크게 회개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본받으려는 뜻으로 그 역시 본명을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하였다. 그는 과거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새 생활을 하던 중에 박해로 인하여 여러 차례 도망 다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가산마저 다 탕진하였다. 그러나 참다운 참회 정신으로 언제나 명랑하고 불평 없이 살며, 냉담자들을 권면하고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 고생과 피로를 개의치 않았다. 그가 거처할 집조차 없게 되었을 때, 교우들은 서소문 밖 고마창골에 집을 마련하여 공소로 사용하면서 집을 지키게 하였는데, 이때 그가 공소회장이 되었다. 그 당시 교회는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주막처럼 꾸미고 신자들이 모였는데, 1839년 4월 7일 사백주일에 어느 예비신자가 밀고하여 포졸들의 습격을 받았다. 긴 심문과 괴로운 고문은 그 이튿날부터 시작되었다. 포장은 갖가지 형벌과 회유책으로 배교를 강요하였다. “한 마디만 하면 너와 처자와 동생을 모두 놓아 주고 재산도 도로 찾게 해 주마.” “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 제 종교이니 차라리 모든 것을 잃을지언정 교는 배반치 못하겠습니다.” “너는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구나,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마음 약한 표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형리들은 그를 땅에 엎어 놓고 온갖 형구를 다 동원하여 모진 형별을 가하자 구경꾼들조차 얼굴을 돌리며 보기를 꺼려하였다. 형조판서는 “임금님께 순종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큰 죄는 아닐 것이다. 다른 죄인들은 나보고 살려 달라고 청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너희들에게 살기를 원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형조판서가 고문하는데 지쳐서 좋은 말로 회유하는 정책을 쓰기 시작하자, 이틈을 이용하여 이광헌은 자신의 두 자녀를 자기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판서는 “네 청을 들어 주마, 그리고 네 아내와 어린 것들은 배교하지 않아도 놓아 주겠다. 다만 네가 배교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하고 대답하자, 이광헌은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여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사형선고를 받고 서소문 밖에서 네 번째 칼에 목이 떨어져 순교하였다. 이때는 1839년 5월 24일이었고,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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