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박희순 루치아(Lucia)는 부유한 어느 외교인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육체의 아름다움과 총명하고 순진하며 솔직하고 상냥하여 누구에게나 칭찬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궁중에 불려 들어가 왕후의 시녀가 되었다. 15세가 채 못 되었을 때 어린 순조 임금이 그의 매력에 몹시 끌려 유혹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썼으나 이 어린 처녀는 비록 외교인이었지만 비상한 지혜와 용기로 그 유혹을 물리 쳤는데, 이 소문은 궁중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한문과 국문이 능하여 순조의 차녀인 복온 공주에게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루치아는 30세쯤 되었을 때에 처음으로 천주교 이야기를 듣고 곧 믿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궁중에 매인 몸일 뿐 아니라, 김 대비의 총애를 받고 다른 궁녀들을 보살피는 상궁의 자리에 있었고, 더욱이 선왕의 위패를 지키는 소임을 맡았기에 궁궐을 빠져 나오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병을 빙자하여 궁중에서 나왔으나, 자기 아버지가 천주교를 대단히 싫어하였기 때문에 남대문 밖의 조카 집에 가서 살았다. 그때부터 사치와 환락 속에서 허송한 세월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후회하여 교리를 더욱 열심히 배우고 본분을 철저히 지키는 데 열심을 배로 하였으며, 특별히 옷과 음식에 있어서 많은 극기를 행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오래지 않아 조카의 가족을 입교시켰다. 1839년에 박해가 일어나자 그녀는 서울의 큰살리뭇골이라는 동네에 집을 한 채 장만하여 전 아가타(Agatha)와 몇몇 여신자와 함께 살았다. 4월 15일 그들이 박해를 피할 방도를 의논하고 있을 즈음에 포졸들이 급습하자, 루치아는 태연히 “이는 천주의 성의이다.” 하고 말한 후 집안에 있는 식구들에게 모두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이르고 술과 안주를 내다 포졸들을 대접하고 옥으로 끌려갔다. “너희들은 궁인으로 다른 여자들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는데 그 사학을 믿을 수가 있단 말이냐?” “저희들은 사학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신 천주를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며칠 동안은 모두가 혹독한 고문을 용감하게 참아 받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배교하였으나, 박 루치아와 전 아가타만이 꿋꿋하게 견디다가 형조로 이송되었다. 여기서 세 번 출두하여 그 때마다 곤장 30대씩을 맞았지만 , “이제야 오주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괴로움이 어떠하였는지 조금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며 태연하니,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이상히 여기고 형관은 또한 그것을 마술로 돌렸다고 한다. 5월 12일 “박녀(朴女) 희순은 신자들과 긴밀히 결합하여 밤낮으로 사도에 빠져 있으며, 그의 행동과 언어와 침묵까지도 요술과 마술뿐이요, 입으로 외는 것이나 손으로 표시하는 것이 하나도 사특한 저주 아님이 없는지라, 이에 확증을 얻어 사형을 선고하였으니 재가하심을 청하나이다.” 하는 주청을 형조에서 보냈고, 재가가 있었다. 박 루치아는 서소문 밖에서 다른 8명의 신자와 함께 순교하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39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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