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로 된 "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이 기도는 상당히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4세기 초엽 동방에서 사용된 이 환호성은 원래 도문(litany)의 매 청원 끝에 연결되어 있던 신자들의 응답이었다. 부제가 기도의 지향을 발표하면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통상적으로 대답을 하였는데 (마치 현행 미사의 "보편 지향기도"- "신자들의 기도" 때에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듯이) 이 대답은 도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교황 젤라시오 (492-496)는 동방 교회의 이 기도 형태를 말씀의 전례의 결론으로 사용하던 오래된 중재 기도의 한 형태로 바꾸면서 중재 기도의 끝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대답을 덧붙이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교황 젤라시오에 의해 바뀐 새 도문과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환호성은 이때부터 미사의 시작 부분에 자리를 잡게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후 미사 전례가 너무 길다고 생각한 교황 대 그레고리오 (590-604)는 미사를 좀 짧게 만들기를 원하여, 특별한 날에는 대답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만을 노래로 하고 앞에 연결되어 있던 도문의 지향을 생략할 수 있도록 허락하게 된다. 이렇게 생략된 형태의 도문이 결과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형화 되어 버렸다. 우리가 바티칸 제2차 공의회 이전에 사용하던 세 번의 Kyrie, 그리고 세 번의 Christe, 또 하나의 세 번의 Kyrie의 형태는 불어권 나라에서 고정되었으며, 이렇게 세 번씩 세 번을 기도하는 근거는 바로 삼위일체 신학의 해석에 있었다. 신약성서, 특별히 사도 바울로에 의한 서간들에서 Kyrios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Kyrie가 참회 예식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경우, 참회 예식 후에 이 Kyrie는 이어진다. 주님을 찬양하고 그 분의 자비를 구하는 이 환호성은 일반적으로 모든 신자 즉, 성가대나 선창자와 함께 노래부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가대만이 노래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에게 언급되는 각 환호성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은 일반적으로 두 번씩 중복되고 있지만 각 나라의 언어의 특성이나 음악적인 고려, 혹은 다른 환경에 따라 세 번씩 할 수도 있다. 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앞에 짧은 말을 덧붙힐 수도 있다 (이를 음악 용어로는 Trope라 하며, 그 예를 한글로 된 미사 통상문에서 살펴 본다면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들을 용서하러 오신" 혹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성부 오른 편에 중개자로 오신" 등의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이 "자비송"은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노래할 수 있지만, 노래로 할 경우 이 기도는 반드시 짧고 간단한 곡으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거창한 곡을 노래하게 될 경우 시작예식이 지나치게 중요해 지기 때문이다. 실지로 시작 예식에서 가장 비중이 큰 노래는 '대영광송'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영광송'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Kyrie'는 짧고 간단한 곡이 되거나 그냥 낭송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순 시기에는 '대영광송'이 없기 때문에 조금 길거나 다성음악도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참조. 미사곡 선곡의 요령).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 모든 신자들이 부제 (부제가 없으면 사제) 의 지향 다음에 응으로 기도문을 외운다.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주례 사제가 참회 예식을 시작하고나서 잠간 침묵을 지킨 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신자들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노래로 혹은 말로 하게 되지만, Trope가 달린 다른 양식, 다시 말해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들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사제가 청원기도를 이끌어 간다면 성가대는 이 자비송을 노래해서는 안 된다(이렇게 되면 자비송을 두번 하는 결과가 된다. 여러 본당에서 가끔 목격할 수가 있었다). 청원기도가 끝나면 곧장 "대 영광송"을 노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미사곡들은 원래가 세 번씩의 환호성으로 되어 있던 곡들이었는데 (적어도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문근신부님의 창미사곡들) 모두 두 번씩으로 바꾸고 말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 번씩도 응답을 할 수 있다. (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 30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두 번의 응답으로 노래를 바꾸었고 더구나 1997년 새롭게 미사 통상문이 바뀌면서 새로운 기도문에 따라 음의 길이가 바뀐 것도 있고 어떤 부분은 몇 소절씩 잘려나간 부분도 있다. 이건 웃기는 이야기이다. 글과 말에는 문법이 있듯이 음악에는 화성법이라는게 있다. 선율의 진행에 따라 어떤 화음은 다른 어떤 화음으로 진행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수적이다. 이런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바뀐 기도문의 글자 수에 따라 음악을 맞추고, 심지어 몇 소절을 자르다 보니 글에서의 문법이 틀려지듯 어색한 음악이 되고만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본당에서 미사곡을 부르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반드시 기도문을 새로 바꾸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또 한가지, 새 기도문의 대 영광송 중간부분에는 "하느님의 어린 양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하느님의 어린 양"에서는 왜 "저희에게"라는 말을 생략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원어는 똑 같은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자비송"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겠다. 이 것 때문에 "자비송"과 "하느님의 어린 양" 노래가 짤려나가게 되었고 이상스런 음악이 되었다고 본다.
미사 때 노래로 이 "자비송"을 하게 될 경우 선창자와 신자들, 성가대와 신자들이 번갈아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성가대만이 노래하는 것도 장려할 만하다. 만약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청원기도가 같이 딸려 있는 자비송 ("진심으로 뉘우치는...") 을 사제와 신자들이 번갈아 하며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청원기도는 원래 주례사제의 몫이 아니고 부제의 몫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제가 제대에서 주례사제를 도우는 미사에서는 이 청원기도를 반드시 부제가 하여야 한다. 미사 중 부제에게 할당된 부분이 겨우 네 군데 있는데 ( "자비송"의 청원기도, 복음 낭독, "보편 지향기도"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부제의 몫을 주례 사제가 대신 하여서는 월권 행위가 된다. 만약 부제가 없고 혹시 공동 집전하는 사제가 있다면 그 사제는 부제의 몫 까지도 대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