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자료실

제목 "Alleluia"를 노래하는 법
작성자김종헌 쪽지 캡슐 작성일1999-04-19 조회수4,780 추천수5

알렐루야/복음 환호송: 부속가 (Sequence)

 

히브리어로 된 알렐루야는 '야훼를 찬미하라' 혹은 '하느님을 찬미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약 성서에서는 이 기쁨의 환호가 히브리인들의 성전 의식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떤 시편들을 ("알렐루야 시편"이라 한다) 시작할 때나 끝날 때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알렐루야 시편 106-108, 111-114, 116-118, 135-136, 146-150).  그러나 신약성서에는 계시록(19,1-9)에 딱 한번 나타나고 있는데, 천상에 있는 구원받은 자들의 개선 찬가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알렐루야가 어떻게 전례 안에 도입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이 환호성을 어떤 곳에서 사용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어려운 문제로 대두된다.  성 아우구스틴 (354-430)에 따르면 이 환호성은 매 주일에 노래 불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5세기 경 로마에서는 이를 부활 때에만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다가 로마의 이러한 관습은 결국 모든 부활 시기에 걸쳐 사용되기에 이르렀고 사순절을 제외한 모든 전례 시기를 통해서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이 환호성은 복음 낭독과 연결되어 있었고 가끔은 복음서를 들고 독서대를 향하여 행렬할 때에 수반되는 노래였다.  이 관습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 후, 지금의 전례에 복구되었다.

 

초기에는 이 환호송을 시작하는 독창자들이 알렐루야의 마지막 모음, 즉 "야"를 길게 그리고 장식하는 것에 익숙하였음을 우리는 서양음악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마지막 모음을 길게 장식하여 노래부르는 창법을 서양음악사에서는 "Jubilus"라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감이 안 오겠지만... 본당 부활 성야 예절 때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만약 복음 읽기 전에 전통 그레고리오 성가의 알렐루야를 사용했다면 마지막 '야'에서 길게 장식되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음악적으로 이렇게 길게 장식하는 Jubilus를, 성 아우구스틴은 "가사없는 기쁨" (Joy without words) 라고 묘사하였다.  중세 초기에는 이 모음 위에 가사를 붙이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더욱 발전해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수많은 Sequence (부속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부속가는 어느 정도 독립된 음악 작품으로서 가끔은 운문 (韻文)의 가사를 가지면서 알렐루야에 잇따라 불리어졌다.  거의 5,000여 개에 이르던 부속가들은 16세기 트렌트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거의 없어지고 지금 전례에서는 오직 4개의 부속가들만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즉, 부활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에는 의무적으로 부속가를 사용하여야 하고, 성체 성혈축일 그리고 고통의 성모 축일에는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알렐루야 노래가 부활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순시기에는 사용할 수 없었으며, 대신 '연경'이라고 알려진 시편 노래로 이 자리를 메 꾸었다.  연경은 반복이 없는 독창곡이었다.  지금의 전례에서도 사순시기에는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못하며, 대신 "몇 가지 지정된 [찬미] 환호가운데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어 미사 통상문, 전례법규 10)

 

 

 

복음환호송을 부를 때 유의할 점

 

1)  알렐루야는 전례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거나 성가대에 의해서 혹은 선창자에 의해 시작된다.  그 다음 이를 모든 신자들이 받아서 한번 더 노래한다.  그 다음에 '전례 독서'책에 있는 시편 구절을 선창자가 노래하고, 이 노래가 끝나면 모든 신자들은 알렐루야를 한번 더 노래한다 (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 37항 a).  위 조항의 권고를 따른다면 알렐루야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두 번의 알렐루야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많은 본당에서는 한번의 알렐루야로 끝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권고할 만한 방법으로는 선창자 (혹은 성가대)가 먼저 알렐루야를 시작하고 신자들이 이를 받아 노래하고 시편구절을 선창자(혹은 성가대)가 노래하고, 끝에 전 신자들이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것이다.

 

2) 위의 문헌 39항에서는 복음 읽기 전에 알렐루야를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 읽기보다는 아예 빼버리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경우 미국주교회의 전례위원회는 침묵을 장려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노래는 복음에 대한 환호송이다. 곧 듣게될 복음,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시 말해 복음 환호송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노래이다.  환호하며 그분을 반기는 표현은 말로써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일미사에서도 반드시 노래로 하도록 할 것이다.  만약 알렐루야 다음에 오는 시편구절을 노래할 사람이 없다면 이 부분은 한 사람이 기쁘게 큰 소리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알렐루야는 전 신자들이 노래로 하면 되겠다.  거듭 반복하지만 평일에도 알렐루야를 노래로 하자.

 

3) 그 다음 문제는 우리들이 알렐루야를 노래할 적에 어떤 빠르기와 느낌을 가지고 노래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즐거운 일이 있고 기쁠 때 우리는 말씨가 빨라지고 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기쁨과 말씀에 대한 사랑이 여러분의 노래를 듣고서 느낄 수 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한없이 느려터지고 맥없는 알렐루야, 그레고리오 성가를 잘 못 부르면 배 아픈 사람이 신음하는 것 같이 들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는가?  성가 365번을 여러분은 어떻게 노래하는가?  알렐루야 (쉬고) 알렐루야 (쉬고) 알렐루야 (끝낸다).  한 숨에 끝내야 되는 곡이다.  어떤 알렐루야를 노래하든지 생기있고 빠르게 알렐루야를 노래하라.  그리고 그런 곡이 아니면 절대 선택하지를 말아야 한다.  

 

4) 마지막으로 알렐루야 다음이나 화답송에서 시편구절을 노래하는 법을 생각해 보자.

선창자나 성가대의 발성이 나빠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게 노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말도 안되는 곳에서 숨을 쉬거나 말을 끊는 것도 상당히 문제다. 먼저 한국말이 되도록 하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다.  여러분이 시편구절을 노래할 때,  우리가 한국말을 할 때와 같이 끊을 곳에서 과연 끊고 있는지, 그리고 말의 길이를 짧게 하고 있는지 생각하며 미리 숨을 쉴 곳을 정한 다음 노래하도록 하자. 물론 신자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똑똑하게 발음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알지도 못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흉내 낸다고 마지막 쉼표 앞의 말을 길게 늘리는 것은 한국말이 아닌 듯 한다.

 

 이런 낭송을 위해서는 소리가 곱고 그렇게 큰 목소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어느 본당에서 성악가가 이 시편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는데 오페라의 무슨 '아리아'를 노래하는 줄 알았다.   

 

이제 우리 성가대원들도 네 성부에서 소리내고, 소리지르기 (!) 에서 벗어나 음악을 만들 줄 알았으면 좋겠다. 3년 전 어느 본당 신부님 은경축 미사 때의 성가대의 노래는 성가가 아니고 완전 행진곡이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얼마나 씩씩하고 우렁찬지... 먼저 성가 가사를 음미하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노래해야할지 그리고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가 못 부르는 성가대일수록 신앙심을 강조한다.  신앙심은 모든 신자가 지녀야할 기본적인 것이기에 성가대원이 자랑할 것은 못 된다. 신앙심 위에 음악적인 기술이 함께 할 때 그 성가대는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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