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김종우님이 전례헌장 118항의 해설을 옮겨 주셨습니다. 이 책은 한국에 한 권밖에 없는 전례헌장 해설서이니 만큼 우리 성가 가족들이 늘 가까이 했으면 합니다. 책을 소개하자면, 현석호 옮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해설총서 5",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성 바오로출판사, 1993년 판입니다.
118항의 한국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례법규의 규정에 따라 신심 행사 중에나 바로 전례 의식 중에라도 신자들의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종교적 대중가곡을 장려하여야 한다."
김종우님이 제대로 보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위에서 말한 (종교적) 대중가곡이란 말과 대중가요란 말과 혼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가사의 내용이든지 부를 수 있는 것 아니냐 혹은 대중가요의 형식을 띈 음악으로 작곡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전례법규의 규정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규정은 그냥 쉽게 제가 문제점 2-1과 2-2에서 말씀드린 것을 참조하십시오.
제가 알기로는 이 헌장은 일본말과 독일말에 능통하시고 공동체 성가집에 성가도 내신 돌아가신 어떤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일본판에서 번역하신 것 같고, 현석호님의 해설서 역시 일본판에서 번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헌장에서는 "종교적 대중가곡"이라 번역되어 있고, 해설서에는 '보통성가'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번역 모두가 문제점이 있습니다.
1. Cantus popularis religious의 오역과 올바른 의미
마침 "Sacred Music"이란 잡지 이번 겨울호에 전례헌장 제6장의 성음악 부분의 해설이 잘 나왔습니다. 이 글에서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118항에 영어로 나오는 religious singing이란 표현은 "라틴어 'cantus popularis religious'의 자구적인 번역으로서 그 진정한 의미는 '모국어로 된 찬미가' (vernacular hymnody)"라고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책임 있는 여러 출판사들이 제 각기 따로 '공의회 문헌'을 번역하여 판매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 여러 출판사의 전례헌장을 함께 보며 정확한 뜻을 알아들으려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종교 대중가곡'이라고 번역한 cantus popularis religious란 말을 미국의 모든 공의회 문헌 출판사들은 한결같이 'Religious singing by the people'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라틴어의 populus를 아는 사람들은 이 단어가 영어의 '통속적인, 대중적인'이란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한국말로 번역된 '종교적 대중가곡'과 '백성들이 부르는 종교 성가'와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주교회의에서 공의회 문헌을 새로 번역한다는 말이 있으니 좀 더 나은 번역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왕 번역된 '종교적 대중가곡'이란 표현을 이용하시더라도 이 것은 바로 '찬미가'라는 것을 아셔야 할 것이고, 우리 성가 가족까지도 이것을 유행가 풍의 노래 혹은 대중가요로 인식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겁니다.
2. 헌장 118항의 탄생 배경
제일 먼저 왜 공의회 문헌에 이런 용어가 들어갔는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전례헌장은 1963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때까지의 교회의 공식 전례용어는 라틴말이었고 전례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공의회 이전 1958년부터 라틴 교회 (로마 가톨릭= 서방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찬미가'(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의 사용을 허락했고 많이 만들어져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찬미가들은 공식용어인 라틴말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전례 기도문 자체를 노래로 만들어 사용하지는 않았고, 자국어로 된 노래들은 라틴어로 되어 있지 않았기에 전례음악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큰 예식들 사이의 시간들을 메꾸는 노래로만 인식되었고 HYMN이라고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공의회가 끝난 1963년부터 우리는 모국어로 미사의 모든 부분을 성가로 노래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사의 전례문 자체를 노래하는 것 즉 전례음악이 이제는 각 나라의 자국어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에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전례음악이 준비된 것이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레고리오 성가만 부르고 있다가 갑자기 모국어로 노래를 하도록 허락하니 온 세계교회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지방교회 (각 나라를 뜻함)는 차츰 차츰 새로운 전례가 요구하는 음악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때 '모국어로 된 찬미가'를 공의회에서는 다시 한번 장려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118항에서 문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미사 고유문 중에 몇 가지, 즉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의 기도문 자체를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하는 대신, 자국어로 된 찬미가로 교체하여 노래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1920년대부터 쭉 성가라는 이름으로 이런 모국어로 된 찬미가만을 (!!)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허락이 나왔건 말건 전혀 교회음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전례음악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서양말인 라틴어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원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교회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공의회의 이 결정으로 말미암아 유럽의 각 나라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레고리오 성가를 이용하지 않고 자국어로 된 찬미가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3. 전례헌장 118항이 말하는 '백성들의 종교적인 노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용어에서 우리는 전례음악과 종교음악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례음악이란 거룩한 전례에 일차적으로 속하는 부분으로서 즉 전례 기도문 자체를 노래로 만든 것을 의미하고, 종교음악은 기도문 자체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가사를 가지고 그 음악의 힘으로 우리의 신앙심을 크게 도울 수 있는 음악을 말합니다.
교회는 이런 종교 음악 (찬미가)을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고 교회의 보호아래 발전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음악이 비(非) 전례적인 의식들 (신앙대회, 성체거동, 성체강복, 성지순례 등) 이나 의식 때에 사용됨으로써 (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노래로) 신자들의 영혼에 크고 유익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4. 찬미가의 이점
백성들의 언어 (모국어)로 불려지는 이런 찬미가 (hymns)들의 선율은 우리가 큰 고생하지 않고 쉽게 외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라틴말로 된 찬미가들은 유럽인이 아닌 우리 한국 신자들에게는 그 가사를 이해하기에 무척 힘들지만, 한국말로 된 찬미가들은 자주 이용하다 보면 쉽게 그 가사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노래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찬미가들은 어른들 뿐 아니라 민감한 청소년까지도 찬미가를 자주 노래함으로써 신앙의 진리를 알게 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찬미가들은 일종의 교리교육으로 알맞다고 교회는 말하고 있습니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께서 발표한 '성음악의 원리 36-37항에서는 이런 종교적인 찬미가들은 젊은이들에게 순수하고도 품위 있는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집회에서 이런 찬미가를 노래함으로써 신자들의 모임에 장엄함을 더 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가정에서 사용함으로써 경건한 기쁨과 상냥한 위로와 영신적인 진보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교적인 찬미가는 그리스도교 사도직에 큰 도움을 주기에 조심스럽게 육성되며 장려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5. 찬미가의 형식
모국어로 쓰여지는 만큼 이런 찬미가들은 각 민족들의 정신과 기질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으며 각 민족의 성격과 사는 장소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교회는 아래와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찬미가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영신적인 결실과 이익을 가져다 주려한다면 이 찬미가들은 가톨릭 신앙의 교의와 전적으로 일치한 가운데 정확하게 이런 교의를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이 성가들은 단순한 가사와 단순한 선율을 사용하여야만 하며 언어의 폭력이나 쓸데없는 (공허한) 말의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합니다. 비록 이런 노래들이 짧고 쉬운 것이지만 종교적인 품위와 진지함을 명백하게 드러내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야 인간 정신의 보다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거룩한 찬가 (sacred canticles)들이 신자들의 감정이나 정신 그리고 열심한 감정을 휘저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예식에서 여러 군중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이런 노래들을 부를 때 신자들의 정신은 더 높은 것으로 고양시키는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6. 찬미가의 바람직한 사용
종교적인 노래, 찬미가들은 전례 이 외에서 사용할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매혹시키고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그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거룩한 기쁨으로 채워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효과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특별히 신앙 행렬 (Pious procession)이나 성지를 향한 순례 그리고 국가적이나 국제적인 신앙 집회 때에도 발휘되기 때문에 그 사용이 장려됩니다. 위에서와 같이 이런 찬미가들은 가톨릭적인 진리 안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칠 때나 젊은이들을 위한 단체 안에서 그리고 신심 단체들의 모임 때에 특별히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다고 교황 비오 12세는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비오 12세 교황의 '성음악의 원리'는 62-66항에서 많은 효과를 내는 이런 찬미가를 열심히 양육하고 장려하여 모든 신자들이 이런 찬미가들을 더 쉽게 배우고, 암기하고, 정확히 노래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이 문헌은 청소년들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이런 찬미가가 청소년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를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소녀들에게 종교 교육의 책임을 진 사람들은 이런 찬미가 사용의 올바른 목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또 가톨릭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중요한 일로 위임된 이런 노래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야만 한다고 교황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험으로 이끌고 가는 성질을 가진 멜로디나 종종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가사들과 함께 하는 멜로디는 사라져야 한다. 특별히 젊은이들의 신앙과 신심을 길러주는 품위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노래를 이런 종류의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성음악의 원리, 62-66항, 비오 12세, 1955).
교회는 이 찬미가들이 신자들의 영적인 이익을 위해 장려되고 많이 사용되기를 권장하면서도 찬미가의 질적인 면에 대해서 상당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세속적인 노래의 사용은 교황 비오 12세께서 잘 예견하신 듯, 당신이 내신 '성음악의 원리'에서 "세속적인 노래들이 [교회 안에서] 소멸될 것을 희망"하셨는데 그 이유는 세속적인 선율의 특성 그리고 가사에 종종 나타나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을 가진 노래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위험한 것이고,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신앙과 신심을 증진시키는 품위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노래를 대체하여 이런 세속 풍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전례헌장 118항에서는 이 교황의 문헌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사도직에 큰 도움이 되는 이런 "찬미가의 사용은 조심스럽게 육성되고 장려되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번역에서 볼 수 있는 이 표현은 한국어 번역에서는 그냥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찬미가의 많은 이점들을 알고 있으며 그 효력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찬미가의 형식이 품위있고 순수한 기쁨을 주는 것이어야 하고 가사에 있어서는 가톨릭 교의와 어긋나지 않는 것을 사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Sacred Music 의 잡지에서 이 해설기사를 쓴 저자는 "모국어로 된 찬미가의 가장 적절한 사용은 전례이외의 신심행사 (기도모임, 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등)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주어진 서양 문화 현실에서, 가정에서의 훌륭한 가톨릭 찬미가의 사용은 방송전파를 오염시키는 도덕적인 쓰레기들을 거슬려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가는 말
저는 음악의 힘을 믿습니다. 음악은 도덕적인 힘,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건 교회 밖에서건 음악의 선택에 있어 항상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것들이 다 좋다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세속의 가치관을 거슬러 싸워야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윤리, 도덕에 관해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항들이 지금의 세속문화와 얼마나 상반되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또 여러분 자신도 교회에서 가르치고 양심이 지시하는 것들을 따라 살지 못하는데 따른 갈등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대중이 좋아한다고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명작보다는 연애소설이 더 읽기 쉽고 재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까지도 명화를 감상하기 보다 음란 사이트를 즐겨 찾아 나서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머리가 하늘을 향해 있듯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위로 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참된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적인 방법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