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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음악 속의 하느님: 하느님은 내마음속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2 조회수2,958 추천수0

[음악 속의 하느님] 하느님은 내마음속에

 

 

“아~ㄹ렐루야 아~ㄹ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 이 선율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때가 때인지라 부활을 노래하는 음악 외에는 다른 곡에서 하느님의 기묘한 능력과 은총에 감사하며 찬미, 찬송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부활찬송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며 그 감동 또한 엄청난 힘으로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감수성은 아닐 것이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라토리오

 

서양의 음악사를 수놓고 있는 무수한 음악가들이 의무적이라 할 만큼 종교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한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 서두에 소개할 곡은 ‘Christ on the Mountain of Olives(올리브 동산 위의 그리스도)’이다. 이 곡은 너무 무겁고 지나치게 지루하다는 혹평을 받은 베토벤의 유일한 오라토리오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헨델의 ‘메시아’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연주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마지막 곡은 ‘천사들의 합창’이란 제목으로 부활절에 많이 부르며 연주곡의 주요 레퍼토리로 선택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천사들의 합창’에서는 예수 역할을 노래하는 테너(예수 역할을 테너 파트로 하였다는 것도 논란의 대상으로 충분하였다.) 독창에서 “이제 사망 권세 이겨, 나와 함께 길이 살리라.”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천사들의 합창’의 전주는 느린 템포의 여덟 마디로서 낮은 성부에서는 겹점8분음표와 32분음표가 한 박자를 이루는 반복을 거듭하며 격정적이고 매우 탄력적인 느낌을 나타낸다. 위 성부에는 8분음표와 32분음표의 4연음부가 한 박자를 이루어 마치 천사들의 무리가 홀연히 나타나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을 자아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어서 울려퍼지는 합창은 ‘이보다 더한 감사와 찬미가 또 있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풍성한 찬미가를 노래한다. 이어 빠른 두 박자로 바뀌면서 전개되는 각 성부는 독자적인 멜로디를 확보하고 서로 주고받는 형태와 화성음악 형식을 병행하며 전능하신 하느님에 대한 찬미를 숨 돌릴 틈도 없이 쉬지 않고 노래한다. 그리고 합창은 “영원히 주 찬미, 거룩한 노래로.”라고 끝을 맺는다.

 

 

예수님의 생애를 노래한 메시아

 

다음으로 소개할 곡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총 52곡 가운데 제2부 마지막 42번째 곡인 ‘알렐루야’ 합창이다. 평범하고 짧은 3마디의 전주에 이어서 울려 퍼지는 알렐루야의 반복! 너무나 위풍당당한 리듬과 선율에서 청중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연주회에 참석하였던 영국 국왕이 이 부분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에피소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겠는가.

 

필자는 이 역사적 사실에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당시의 국왕은 알렐루야의 합창 부분에서 일어섰다지만 이 합창만을 듣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는 것일까? 아니라고 판단된다.

 

제1부 ‘예언과 탄생’ 부분의 19곡과 제2부 ‘수난과 속죄’ 부분에서 41번째 곡까지의 감상을 통해서 이미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와 우리 죄를 대신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을 말씀만이 아닌 음악으로써 전달받고 크게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메시아’의 작품 속에는 독립적으로 연주되고 있는 합창곡들이 여러 곡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들이 많다. 제3곡 ‘주의 영광’, 제9곡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 제12곡 ‘아기가 태어나셨네’, 제15곡 ‘주께 영광’, 그리고 마지막 ‘아멘 코러스’까지.

 

두 곡을 비교해 보면,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독립된 하나의 합창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또 헨델의 작품에서는 탄생과 수난을 겪고 부활하신 과정을 총체적으로 듣고 느끼면서 그 감동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위의 합창곡들이 다른 시기에 불렸다면 부활시기와 같은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또한 노랫말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하느님을 바르게 알 수 있을까?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주님을 만나겠다는 간구도 없이 주님을 느낄 수 있겠는가?

 

베토벤과 헨델이라는 두 거장의 곡으로써 주님을 그린 모습과 느낌을 찾아보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에 있을 것이다. 위대한 작곡자의 작품만이 하느님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성음악을 감상하는 이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다.

 

시기에 적합한 음악의 선택과 그 음악에 대한 사전 지식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와 감상을 한다면 오늘 소개한 대곡들뿐 아니라 소품들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파스카 성삼일의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에서도 하느님을 뵐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려는 준비된 내 마음속에 하느님은 조용히 찾아오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김길준 요셉 - 신구대학교 유아음악과 교수.

 

[경향잡지, 2011년 6월호, 김길준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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