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박현미 체칠리아 작곡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화답송을 NWC2.0 파일로 만들어 올립니다. 공통 전례에 속하며 다행히 작년과 동일하오니 작년에 내려받으신 분들은 그대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귀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작곡해주신 체칠리아 자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NWC파일을 악보로 인쇄할 때에는 프린터에 따라 여백설정이 다르기 때문에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첨부한 PDF파일을 사용하거나 이것을 참고하여 NWC파일의 여백을 조정하여 쓰시기 바랍니다.
목5동성당 성가정성가대 나눔터지기 올림
화답송 : 시편 31(30),3ㄷ-4.6과 7ㄴ과 8ㄱ.17과 21ㄱㄴ(◎ 6ㄱ)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소서. ◎
오늘 전례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다. 원래 양반 가문이었는데, 그의 아버지 김제준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세례를 받고 1836년 열여섯 살에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사제가 되고자 마카오로 떠난다. 김대건 신부는 1844년 부제품을 받고 선교사 신부의 입국을 도우러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시의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해 8월 익산 나바위 근처 바닷가로 입국한 김대건 신부는 병오 박해 이듬해인 1846년 연평도 부근으로 입국하는 선교사를 기다리다가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 스물여섯의 나이로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되시어, 순교로 한국 교회의 기초를 놓아 주시고 모든 성직자의 수호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신앙과 열정을 본받아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청하며 정성을 다하여 미사를 봉헌합시다. <매일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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