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모테트합창단 정기 연주회 참관기
성가 가족 여러분 , 얼마나 바쁘십니까?
세상살이 말고도 하느님 찬미하는 거룩한 평신도 사업 말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갈 곳은 성당과 음악회 뿐이리...(좀 이상하네요...)
일본사람들은 12월을 사주월(師走月)이라고 합니다.
년말이 되면 평소에 근엄하고 점잖 빼던 스승도 뛰어다녀야 할 만큼
바쁜 달이란 뜻이지요. 허상을 쫒느라 바쁘지 말고 성음악회 다니느라 바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유수한 우리 교회음악 전문합창단인 천진모테트 합창단 제11회 정기연주회에 다녀온
얘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천진 모테트란 한국 교회의 성지인 천진암을 기리며
순수 교회음악연주를 위하여 1989년에 창단되어 꾸준히 연주회를 가진 합창단입니다.
국내 초연하는 곡이 많은 것도 전통이고요.
지휘자는 이장호 형제로 오래 전에 서울대 작곡과를 나온 후(최병철 교수와 동기?)
조용한 가운데 서울 중곡동과 반포동 성당 등 에서 지휘활동을 해 온 분입니다.
성녀 세실 여성 합창단도 맡고 있는데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 주년기념, 전국 성가 경연대회(2월 26일,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중곡동 성가대를 이끌고 나와
전국의 유명 성가대 20개나 출전한 대회에서 쟁쟁한 성가대들을 누르고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알려진 분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금 일봉과 피아노 한 대를 부상으로 받기도 해서
부럼을 샀습니다.
사실 지금이나 그 때나 중곡동이라면 서울 강북지역의 단독 주택가에 있는
보통 규모의 성당인데 요즘 말하자면 돌풍을 일으킨 셈 입니다. 이 때 한국에는
다성음악 개념이 별로 없었는데 pueri hebraeorum을 지정곡으로 하여 그 후로 붐을 이뤘지요.
제가 이장호 지휘자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 천주교회에는
말없이, 묵묵히 행동으로 봉사하는 이러한 음악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음악 영역을 과시하듯, 화려한 외국 유학 경력으로 권위를 내 세우는
음악인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현실에 존경받을 만한 분이라고 봅니다.
지휘자와 함께 천진 모테트를 이끌어 가는 또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바로
단장인 강순중 형제입니다. 중곡동 성당 시절부터 오늘날 까지 찰떡 궁합이 되어
임무를 분담하고 도우며 합창단 살림과 운영을 맡아온 분입니다.
걸핏 하면 갈라서고 이합집산하는 합창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설이 길어 졌습니다. 본론에 들어 가겠습니다.
2000년 12월 1일 저녁 7시 30분, 서울 건국대 새천년 기념관에서 연주회가 있었다.
사주월의 금요일 퇴근 시간의 서울 교통상황은 한 마디로 지옥과 연옥 사이이다.
회사에서 퇴근 시간부터 한 시간 내에 연주회에 도착하기란 불가능 하여 차를 버리고
지하철을 타니 30분만에 건대앞 에 도착한다.( 지하철은 역시 좋은 것이여....)
지하철에서 땅위로 올라와 보니 와 ! 여기가 대학 거리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네온 싸인 간판이 황홀하다 못해 어지럽다.
방방에 노래방이요, 곡곡에 소주방이다. 차이가 뭔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곧 건전한 공상에 들어간다.
이 동네 성가대는 분명히 잘 될 것이다. 대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래를 즐기고
많이 부르니 성가대가 그 덕 좀 보지 않을까...하고 .
건대 새천년 기념관은 새 건물이다. 고층 빌딩인데 공연장은 지하 3층에 있다.
그러니 소음이 없고 좋다. 최신식 건물이라 깨끗하고 화려하다.
캠퍼스의 야경도 근사하다. 호수도 밤에 보니 낭만적이고....
좌석은 약 800석으로 극장식 홀인데 공연하기에 안성 맞춤이다.
오늘 청중은 약 500명 정도였다. 의자가 너무 푹신-해서 고전음악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잘 자게 생겼다.
오늘 출연자는 합창단이 30명으로 완전한 혼성 4부 합창단이다.
연령층은 여성은 30대-40대 초반, 남성은 30대-5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여성 16명에 남성 14명이다. 근래에 이렇게 여/남 비율이 좋은 합창단을 못 봤다.
주님이 창조하신대로 성인 남녀 비율 그대로이다.
이 중 소프라노 독창자 1명(이선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 초청된 성악가 (소프라노 금혜주, 메조 서윤진, 테너 정준영, 베이스 박용민)
그룹이 포진하여 청중들의 기대를 모았다.
제1부
리차드 데링의 Ave virgo gloriosa 17세기 초 작품
피터 필맆의 Tivi Laus 17세기 초 작품
란달 톰손의 Alleluia
헨델의 Psalm 112 18세기 작품
제 1부 곡들은 35분간 연주 되었다.
피아노로 첫음을 준 후 아까펠라로 혼성4부가 나오는데
소리가 뭐랄까....그래, 찬란하다.
연령이 중년이라 오히려 윤기가 있어서 음색이 좋다.
특히 7명의 베이스가 뿜어내는 저음은 과연 남성(男聲)의 매력을 다시 일깨워 준다.
여성파트는 성악 전공자가 꽤 많고 남성은 거의 성가대 지휘자이거나 전문 합창단
(가톨릭 남성합창단 울바우?)에서도 활동하는 분 들이다.
세 번 째 곡인 알렐루야는 다른 가사는 없고 오직 알렐루야라는 단어 한 개로 된 노래인데
노련함이 주는 평온함과 기쁨, 꿀처럼 끈끈한 멜리스마가 인상적이다.
네 번째 곡인 시편 112장은 22분이나 되는 긴 곡이다.
독창자(이선미)의 비중이 많고 주제어는 "야훼의 종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의
라틴어 가사이다. 피아노(조양명)과 오보에(박선아)의 듀엣도 좋은 변화를 준다.
독창자는 미사때 특송을 부르기에 적합한 음색을 가졌다.
(성탄 자정미사때 불러다가 경사롭다 독창을 시키면 참 좋겠다).
대곡이라 그런지 독창자가 처음엔 악보에 너무의존하여 객석을 볼 여유가 없었나 보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국어책 읽는 모습을 연상케...)
나중엔 점차 나아지고 표정도 밝아져서 빼어난 실력을 과시하 듯 잘- 불렀다.
혼성 4부의 균형과 조화는 역시 합창의 중심이 어떤 구성이어야 하는가에 답을 주었다.
제2부
하이든의 Te Deum 18세기
약 10분간 연주되었는데 참 잘한다. 이런 합창 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하여
어디서 일까?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생각이 났다.
80년대에 활발했던 대우합창단의 음색과 닮았다. 라틴어 발음도 전혀 부담감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발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f/p 의 구분이 명확하고 듣기 편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생쌍의 레뀌엠미사곡이다.
한국 초연이라고 소개된 곡이고 장장 37분이나 걸리는 대곡이다.
레뀌엠 기리에부터 아뉴스 데이 까지
4명의 독창자가 출연하고 독창, 2중창, 3중창, 4중창, 단부제창, 합창이 8개 악장에 전개된다.
특히 4중창을 들으며 하느님이 인간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주셨구나...
생각하니 더욱 감사하고 경외롭게 느껴진다.
이 합창단이 훌륭한 이유중에 하나는 흔히 독창자 그룹이 협연하면 합창은 빛을
잃고 들러리 서는 느낌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오늘 연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성악가 4명과 겨루어 손색이 없는 연주를 하고 있다.
끝날 때 입모양이 거의 통일 되고 앨토가 모나지 않게 받쳐 주며 소프라노는
고음을 아주 쉽게 올려준다(이럴 때 지휘자는 아주 아주 기쁘다)
테너라고 생소리 튀어 나오지 않고 융화되어있다.
합창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느니......
[어찌 보면 독창자의 독창이 합창수준을 못 따라간 느낌도 들 정도 였다]
정규공연에 이어 앙콜에 보답하여 리 스코티의 나의 눈을 여소서(open my eyes)를 연주했는데 개신교 찬양풍이다. 이어서 죤 루터의 GLOLIA를 선사했다.
오늘 천진모테트는 많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매 년 연주회를 개최했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연주 수준도 A 급이다.
다만 공연장 확보가 어려워서 레뀌엠 미사곡을 12월에 연주해야한 것이 안타깝고
앙콜 곡도 글로리아는 대림을 앞 둔 이 시점에, 더구나 레뀌엠 연주 직후에,
잘 어울리는 곡은 아닌 듯하다. (물론 이 곡들은 교회음악이지만 무대연주용이지 미사 전례용은 아니다) 또 부득이 했겠으나 오르간 없이 피아노로만 반주한 것도
아쉬웠다. 이런 요소들을 배려 했다면 더욱 금상첨화였겠다는 의미이다.
천진 모테트 합창단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끝.
김빠뜨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