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자료실

제목 [마카오] 성 안토니성당 미사참례기
작성자김건정 쪽지 캡슐 작성일2001-05-23 조회수2,962 추천수10

성가 가족 여러분 안녕하시지요?

 

오늘은 2001년 5월 20일 부활 제6주일, 마카오 성 안토니 성당에서 미사참례한 실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마카오는 어릴 때 "마카오 신사"가 입는 옷 상표 정도로 알았었습니다.

지금도 막연히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5백 여년 식민지였다가 3년 전 반환된, 홍콩 서쪽의 도시로만 알고 간

것입니다. 이 곳은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 볼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카오 에는 주교좌를 포함하여 9개의 성당이 있습니다. 성 안토니 성당은 정식 명칭이 성 안토니 (聖 安多尼堂)

이고 영문은 St. Antony church입니다. 포루투갈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 인구 약 50만명 중 불과 5%의

포르투갈인이 지배했지만 지금도 주임신부님은 포르투갈인 이고 복사 서는 두 노인도 포르투갈인 이고 미사 언어도 포르투갈어입니다.

 

[거리는 100년 전에 성장이 멈춘 도시이고 포르트갈어와 중국어 간판이 공존 합니다. 영어는 없어요. 거리 중심부에

중국 인민군 약 1개 중대병력이 진주해 있는 모습이 중국 땅임을 실감케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홍콩과 달리 마카오(Macau) 에는 한인 성당도 없고 전혀 정보 없이 갔습니다.

 

성당 위치도, 전화번호도, 미사 시간도 모른 채 주님만 믿고 무식하게 홍콩에서 페리를 탄 것이 아침 8시.

거리가 35해리(약 62Km)인데 터보 젯트 보트가 한 시간에 주파한다.

마카오에 내려 영어를 해 보니 마이 동풍이고 중국어 공부도 꽝뚱어를  쓰기 때문에 불통!

 

난감하지만 용케 영어를 조금 하는 안내원을 만나 뻐스를 탔다.  엉뚱한 데서 내려 지도를 들고 바디 랭기지

(Body language) 로, 때로는 말도 안되는 포르투갈어를 쓰며 드디어 성 안토니 성당에 도착했다. 동행한 아내는

평소에 내 실력을 모르다가 신통한 듯 쳐다본다. 이마에는 땀이 숭숭--

시간이 9시 50분인데 미사는 주일에 단 한 대, 10시 란다.(오! 하느님! 감사하나이다!)

성 안토니 성당은 우리의 사제 김대건 신부님이 공부하셨던 신학교 자리이다.

 

안내원에게 "꼬무이스따!, 뱅유 다 꼬레이아!..(포르투갈어, 안녕하셔요, 저 한국에서 왔어요)" 했더니 매우 반가와 한다.

그 이유는 곧 나온다.

 

이 성당은 역사가 오랜 성당인데(1835년) 여러 번의 화재를 만나고 개장하여 지금은 아주 아름답다. 겉 모양은 평범한 듯 해도 내부는 흰색과 미색(크림색)으로 단장하고 포르투갈 식으로 꾸며 놓아 채색이 조화를 이룬다. 좌석 수 약 200석으로 아담하고 2층이 있지만 작은, 형식적 모양같다.

 

후덥지근한 여름날씨인데 선풍기 약 20대가 돌아간다.

제대 뒤 중앙에 십자 고상이 있고 제대 앞 좌측에 낮익은 목상이 있다.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의 김대건 신부 상이다. 어찌 감동과 감회가 없으랴?

영어로 ST. ANDREW KIM 이라 써 있고 동상 받침대에는 한문으로 聖 金大建 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포르투갈 신자와 마카오 신자들의 사랑과 존경심이 고맙고 감사하다.

오른 쪽에는 성 요셉과 아기 예수상이 있다. 성모상은 벽 통로 들어간 곳에 있다. 즉 통상 성모님 모신자리에 김대건 신부님 상을 모신것이다.그만큼 우리의 김대건 신부님 공경이 큰 곳 이다.

 

(서설이 길어 졌습니다)

 

오전 9시 50분에 들어가니 묵주기도와 성인 호칭기도를 바치고 있다.

신자는 약 100 여명 정도이고 포르투갈 사람은 약 20 여명....그리고 한국인 2명....

나머지는 마카오(중국인)이다.

부활 제 6주 주일 미사는 10시부터 시작 되는데 포르투갈어 미사이다.

 

노 사제와 복사가 조용히 입장한다.

성가대는 없고 좌측 통로(벽)에 전자 오르간이 있고 오십 세 정도의 남자가 앉아있다.

즉 입당성가는 없다. [입당송을 낭송했는데 내가 못 알아 들었을지도 모른다.]

 

Kyrie를  오르가니스트가 연주하고 이어서 신자들이 제창한다.

대 영광송은 낭송으로 한다. 오르간 침묵!

 

제1 독서후 화답송은 짧게 낭송.

 

제2 독서 후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를 오르간이 나오고 노래를 하는데......

무슨 노래이겠습니까? 우리가 많이 부르는 성가책 365번(그레고리오 성가)을 부른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환호 노래이고 가톨릭 공동체의 공통노래 아니겠습니까?

 

공동체가 , 알렐루야, 아-알렐루야아, 알레엘- 루우야...를 합창한 후  

독송자가 혼자 알렐루야를 또 독창 한 후 시편을 읽고

공동체가 알렐루야를 세 번 노래하고 끝난다. 우리보다 알렐루야를 많이 하는 셈이다.

 

봉헌 행렬은 없고 사무장인 듯 한 여교우가 잠자리채 같은 헌금낭을 들고 순회하며 모금하고

이 때 오르간 독주가 있다.

 

거룩하시도다 와 하느님의 어린양은 라틴어가 아니고 포르투갈어 이다.(그래서 못 알아들음)

다만, 호산나...하는 가사는 들린다. 신자들은 노래를 작게 따라한다.

"신앙의 신비"는 사제 선창 후  신자가 노래하고 ...

성체성가는 오르간 독주만 있다.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 신자는 거의 모두 성체를 영 하는데 이 성당 신자들은 약 절반 정도만 영한다.

 

퇴장성가는 사제가 큰 소리로 선창하며 신자들에게 함께 노래하자고 지휘하며 독려하는 모습이다.

 

그 후 후주를 또 노래하며 퇴장한다.

미사는 강론이 5분 정도로 짧아서인지 35분만에 끝났다.

 

미사후 오르가니스트와 대화를 했다. 다행히 영어를 잘 한다.

나의 소개를 하고 성가대가 있느냐고 하니 없다고 한다. 그러면 부활이나 성탄 때는 있느냐...하니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쑥스러워 한다. 그러면서 나더러 주임 신부님께 건의 해 보라고 한다.

(여러 번 건의 해 보았으나 안된다는 뜻...)

상황을 알겠다. 도무지 성가대 구성이 안되어 오르가니스트 혼자 전례음악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오늘 교훈이 있다.

한국의 대다수 신자와 성가대 지휘자(일부 사목자 포함)들은 성가의 전례적 중요성을 잘 못 알고 있는게 아니가...

하고 생각 될 때가 있다.

의례히 입당/ 봉헌/ 성체/ 퇴장 성가 위주로 부른다. 알렐루야는 낭송으로 하고...

일반성가보다 환호 노래와 "거룩하시도다" 가 더 중요하거늘....

오늘 마카오의 성 안토니 성당에서는 포르트갈 식 인지 모르겠으나

 

입당성가-입당송 낭송?

기리에-노래

대영광송-낭송

화답송-낭송

알렐루야-성대히 노래

신앙의 신비-노래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양 -노래

퇴장성가 및 후주 함께 노래...이런 프로그람이다.  

전례적으로 꼭 노래로 부르는 것이 필요한 노래는 모두 노래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있다고 본다.

 

신자석에는 성가책이 없고 오르간 옆에 쌓아둔 책이 있는데 펴 보니 중국(한문)가사로 된 성가책이고 홍콩

교구에서 1985년에 발행한 것이다. 앞 머리에 선곡원칙에 대한 설명이 있고 코랄 성가풍에  한문가사를 붙인

미사곡 8곡 과 일반 성가가 299곡 수록 되어있다. 이상한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미사곡에도 대영광송이 없다.

또한 가사위에 숫자를 써 놨는데 중국어 특유의 성조(?엑센트 비슷한 음의 고저 표시)인  듯 하다.

한 곡을 소개하면, 천주신성식량 이란 곡은 우리 성가책 197번 나그네 양식이요 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성탄성가(지극히 높은신, 천사찬송 하기를,,등)만 혼성4부 악보이고 모두 단성부이다.

 

후기: 미사 후 주임신부를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매우 반가와 한다. 명함을 주시는데

한문으로 "마카오 천주교 복리회 주임 막경은 莫慶恩 신부 이다. 뒷면을 보니

Lancelot M. Rodrigues  포르투갈 신부이다. 70세 정도로 뵈는 노신부인데

김수환 추기경을 잘 안다고 안부를 전하라고 하신다(어떻게 전한담?...)

 

우리나라와 다른 또 한가지는, 우리는 한국 사제가 사목한다. 마카오 신자들은 아직도 포르투갈 신부님의 포르투갈

언어로 드리는 미사와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해방 전 모습과 흡사하다고 느꼈다. 포르투갈 사제가 철수하면 중국

애국 천주교 신부들이 올 지도 모를일이다....(이들은 중국 정부가 사제를 임명하며 로마 가톨릭이 아니다).

 

성당 뒤 까모스 공원에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참배하고 성 바오로 성당 유적(다 무너지고

앞 벽만 남은 유명한 곳, 그러나 신학교 자리였음)을 돌아보고 마카오에 있는 거의 모든 성당을 순례하고 돌아왔다.

 

먼길을 다녀 올 시간과 재력과 건강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한국과 미국, 일본, 독일, 뉴질랜드, 홍콩, 이태리 등지에서 성원해 주시는 성가 가족 여러분,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한국 세실리아 성음악 협회 회원 여러분 에게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서울에 돌아와서

김빠뜨리시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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