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보고만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글을 썼다가 지우기도 했구요.
생활성가를 만드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시니 한말씀드립니다.
먼저 제 소개를 간단히 드리면,
생활성가에 발을 들려놓은지 대략 10년 조금 넘었고, 굿뉴스 생활성가/CCM동호회 초기멤버이고, PBC 창작생활성가제 2번출전하여 입상하였고, 현재 소속된 팀과 함께 수원교구 청년사목부 행사에서 음악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교구 청년전례연구부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구요. 요즘은 뜸합니다만, 생활성가 관련 사이트에서 칼럼을 쓰기도 하였고 PBC의 ’세계의 생활성가’라는 프로에서 외국 CCM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밴드악기(또는 생활성가)를 미사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겪고 계십니다.
그 문제는 전통성음악과 현대그리스도교음악의 충돌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생활성가음악이 청년들에게 관심을 일으킬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에 도입하고자 노력하는 것일테구요.
문제는 모든 생활성가가 미사에 적합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전통성음악을 옹호하는 분들께 ’생활성가는 전례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전례에 대해 무지한 선곡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사실, 가톨릭성가로 선곡을 해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어떤 성가를 선택하여 어떻게 부를 것이냐’이지, ’부를 성가가 어떤 장르의 곡인가’는 아닙니다.
성가는 성스러워야하고, 경건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충분히 옳은 말씀입니다.
전례문(미사통상문,미사고유문)을 사용한 노래만이 성가이다... 이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스럽고 경건함을 많은 사람이 느끼는 전례문성가-미사곡이 생활성가이든 폴리포니이든 그레고리안이든 어떻습니까?
성스럽고 경건함..을 누가 정확하게 정의하실 수 있습니까?
이 곡은 성스러워..라고 했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예전에 어디서 봤던 글에는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악마숭배교에 신도였던 사람이 회개하여 교회로 돌아왔는데, 그가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 발작에 가까운 거부반응 보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악마교에서 의식에 바하의 음악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출처를 알수가 없습니다)
바하의 음악은 분명 많은 사람들이 성스럽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사람은 바하 음악을 들으면 악마교의식이 떠올라 괴로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성스럽고, 경건함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리는 변하지 않겠지요. 그렇기에 진리이니까요.
하지만, 음악은 진리가 아닙니다. 인간의 감성적인 요소는 절대적인 진리라 할 수 없다는 것,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당연히, 음악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 요소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성가대만이 부르는 그레고리안과 폴리포니로만 미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일랜드에서 얼마간 머물렀을 때, 그곳의 미사에서는 기타와 피아노, 퍼쿠션(타악기)을 사용하여 미사를 드렸습니다. 영성체 후 묵상 때에는 팝송을 연주하더군요. 사실 더 놀란 것은, 일반 주일이었는데도 대영광송을 아예 생략했다는 것이지요. 노래로 하기 힘들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을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아일랜드는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입니다. 낙태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나라이기도 하구요. (제가 갔던 때는 98년 1월 경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사가 얼마나 로마전례에 충실하게 잘 집전되었는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전례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얼마나 충실히 느낄 수 있느냐가 바로 전례의 참여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일 것 입니다.
물론, 전통 성음악으로 감동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반면에 생활성가/복음성가로 감동을 느끼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장르에 대한 취향은 서로 ’다른’ 것이지, 무엇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전례에 잘 부합하는 성가는 절대로 장르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가사내용과 ’얼마나 대중이 함께 부를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폴리포니가 미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을 거라 믿습니다.
그만큼, 부르기 어려운 생활성가 미사곡이 미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코랄형식의 노래가 미사에 합당한 성격을 보여주는 만큼, 개신교에서 발달한 praise and worship이란 장르의 곡들은 미사에 부르기 쉬운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 이 장르는 개신교에서 예배음악으로 발달해온 장르입니다)
생활성가를 비판하시는 분들.. 그 비판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그 책임의 차원에서(제가 전례 공부를 하고 있으며, 교구에서 음악을 맡고 있다는 책임..) 전례에 합당한 곡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만들기도 하구요.
제가 만든 미사곡도 있습니다. 10년 전에 만든 곡이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론들을 부합하지는 않습니다만..
최근에 하고 있는 작업은 화답송입니다. 일종의 시편성가이지요. 생활성가에서는 태부족인 분야이기도 합니다.
조금 말이 길어지고 있는데,
김보현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 저도 주변에서 종종 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것은 종종 여러가지 면에서 전례에 대해 무관심했던 성가담당자들이 자초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생활성가이든, 전통성음악곡이든, 아니면 가톨릭성가에 있는 노래든지 그것은 ’사목적으로 유익하다고 판단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목적으로 필요하다면 성가가 전혀 없는 미사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과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를테면 한달의 한번정도 밴드곡 미사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죠.
사실 저는 가장 바람직한 밴드반주의 미사는 한달의 한번정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주하는 밴드미사는 그 효과도 별로 좋지 않고, 연주도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팀은 프로연주자들도 여러명 있는 팀이지만, 미사반주가 있기 전에는 2~3번정도 모여서 편곡과 선곡문제를 상의하고, 연습을 합니다. 미사 때는 어떤 공연보다도 잘 연주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옛 교회격언에 ’성가를 잘 부르는 것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 Qui bene cantat, bis orat’라는 말씀 있습니다. 저는 이를 생각하며 ’연주를 잘 하는 것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일들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리며 두서없는 글을 정리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마르 2, 28)
"전례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전례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 덧붙이면, "그러나 보편성을 위해서라도 형식을 잘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P.S. 제 의견이 더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