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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음악 어떻게 준비할까? (5) 성찬 전례와 음악 (3)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08 조회수1,839 추천수1

미사 전례 음악 어떻게 준비할까? (5) 성찬 전례와 음악 (3)

 

 

들어가는 말

 

지난 호에서 필자는 한국교회의 미사 전례 음악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영성체 노래의 사용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영성체 노래의 역사, 봉사적 기능 그리고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이하 「총지침」)이 추천하는 영성체 노래의 가사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영성체 노래들을 「총지침」의 가르침에 비추어 살펴보고 과연 이 노래들이 그 봉사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영성체 노래

 

1) 『가톨릭 성가』의 분석

 

현재 한국교회의 공인 성가집인 『가톨릭 성가』에는 영성체 때에 사용할 노래들을 ‘성체’라는 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주님과의 일치나 통교, 성체를 영한 형제들 사이의 일치, 주님을 영접하는 기쁨을 나타내는 노래 외에 성체 강복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성체 흠숭, 찬송의 노래가 너무나 많이 섞여있다.

 

성가집이 성체 노래로 분류해 놓은 총 61곡(부록 포함) 가운데는 「총지침」이 일차적으로 사용하도록 추천하는 시편을 이용한 노래는 한 곡도 없으며, 두 번째 선택사항인 대송이나 후렴을 가진 영성체 노래 역시 한 곡도 없다. 성서를 인용한 가사로 된 노래는 외국인(M. Suzanne Toolan)의 곡(166번 ‘생명의 양식’)이 유일하다. 이는 한국교회가 미사 전례에서 사용하고 있는 영성체 노래들은 「총지침」이 권장하는 영성체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사용하고 않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성가집에는 성체 노래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4곡 실려있으며(184번, 192번, 195번, 508번), 나머지 57곡은 「총지침」에서 ‘적합한 곡’이라고 지칭하는 곡, 곧 찬미가들이다. 이들 찬미가 57곡 가운데 라틴어로 된 노래가 16곡인데, ‘O Salutaris Hostia’가 3곡(183번, 185번, 186번), ‘Tantum Ergo’가 4곡(189-191번, 193번) 있으며, ‘Panis Angelicus’가 3곡(187번, 188번, 503번) 그리고 ‘O Esca Viatorum’이 2곡(197번, 507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Veni Jesu Amor Mi’(173번), ‘Ave Verum’(194번), ‘O Bone Jesu’(196번)와 ‘Pie Pellicane’(198번)가 각각 한 곡씩 있다. 이들 라틴어 찬미가들 거의 모두는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노래로 보아 무방하며, 성체강복, 성시간 또는 성체현시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이 가운데는 영성체 후 감사 침묵 기도 때에 사용할 수 있는 곡도 여럿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영성체 노래로는 사용할 수 없는 노래들임에는 틀림없다. 영성체 행렬 때에 사용하는 노래와 영성체 후 감사 침묵 기도 때에 사용하는 노래는 그 봉사적 기능이 다른 만큼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성가』에는 한국어 성체 찬미가들이 41곡 있는데, 이 41곡 가운데 가사에서 성체를 찬미 또는 흠숭하는 색채를 강하게 느끼게 하는 노래를 우선적으로 살펴보면, ‘오 지극한 신비여’(152번), ‘한 말씀만 하소서’(156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158번), ‘세상의 참된 행복’(159번), ‘성체를 찬송하세’(161번), ‘성체 성혈 그 신비’(162번), ‘오묘하온 성체’(168번), ‘자애로운 예수’(170번), ‘그리스도의 영혼’(172번), ‘이보다 더 큰 은혜’(175번), ‘믿음 소망 사랑’(176번), ‘성체 앞에’(178번), ‘신비로운 몸과 피’(181번), ‘예수여 기리리다’(489번), ‘평화의 하느님’(500번), ‘사랑으로 오신 주여’(506번) 등 16곡이 있다.

 

위의 16곡 외에도 가사의 표현이 애매하거나 영성체의 의미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가사를 가진 노래들도 있다. 그리고 영성체 행렬을 위한 곡이라기보다는 성체를 모시기 전 또는 성체를 모신 뒤에 부를 수 있는 노래들도 다수 있다. 따라서 선곡하는 사람들은 비록 성가집의 ‘성체’ 항에 포함되어 있는 노래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 있는 찬미가들을 영성체 행렬 때에 사용하지 말 것이며, 전례주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찬양과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가장 바람직한 영성체 노래에 대해서는 지난 호 참조).

 

다시 말하지만 성체를 찬미하는 곡들은 영성체 노래로 사용하지 말아야 함을 사목자들과 교회 음악가들은 명심하여야 한다.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 36항과 1969년 11월 미국 주교회의에서 결정한 지침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두 문헌은 “성체 강복 때에 사용하는 노래들은 통교보다는 성체에 대한 흠숭과 경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영성체 노래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한다(미국 주교회의 발행 「총지침」 부록 56항 (i) 참조).”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2) 영성체 음악의 다른 가능성

 

「총지침」은 87항에서 “영성체 노래는 성가대만 부르거나 성가대나 독창자가 회중과 함께 노래할 수도 있다.”라고 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고 있다. 이 지침의 정신에 맞추어 생각해 볼 때, 영성체 행렬 때의 음악으로는 성가대의 합창, 독창 또는 기악의 연주 역시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성가대도 현대의 화성음악만을 노래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을 노래함으로써 영성체 예식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본당 공동체가 교회음악의 보고인 그레고리오 성가, 다성 음악, 오르간을 위한 성음악 등을 소화해 낼 만큼 음악적으로 풍부하다면, 그 공동체는 정말 축복받은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성가대 연주의 완성도는 전례의 아름다움을 증진시킬 것이고,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신자들이 바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이기에 그러하다. 

 

그렇다면 영성체 예식을 풍성하게 하는 데 노래 부르는 것 이외의 다른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만약 영성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어떤 노래의 2절 또는 3절까지를 노래한 다음, 그 노래를 편곡하여 오르간으로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즉흥 연주 또는 간주라고도 할 수 있다). 오르간의 간주가 있은 다음, 신자들은 남은 절을 노래하는 방법이다. 오르간의 이런 연주는 마치 대송이나 가사의 각 절에 대한 주석(commentary)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미 형성된 서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지원하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오르간 간주의 가장 적당한 길이는 한 절을 노래 부르는 정도의 시간이며, 그 횟수는 반드시 계산되어야 한다(예를 들면, 두 절 뒤 또는 세 절 뒤에 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오르간의 간주가 너무 길 경우, 노래로 형성된 리듬을 망쳐버리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날의 복음에서 따온 짧고도 의미심장한 성서 본문을 노래의 두 절마다 또는 세 절 뒤에 신자들이나 선창자가 읽는 것도 가능하다.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먹고, 피를 마실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정신과 연결시킬 수 있기에 이러한 방법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아무튼 다양한 방법으로 영성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미사 중간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언제나 전례위원회, 오르간 연주자, 성가대 지휘자 그리고 해설자의 협의를 통하여 미리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영성체 음악을 시도하려면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주와 관련하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영성체 때에(예물 준비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자들이 노래 한 곡을 끝마치게 되면, 오르간과 노래가 동시에 끊어지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러한 연주는 전례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반주자는 그 노래를 조금 더 연장하여 연주한 뒤에 마치는 재치가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해설자가 다음 곡을 안내하면 어떨까? 아니면 해설자가 다음 곡을 안내하지 않고 반주자가 새 음악을 시작하면 어떨까? 

 

무엇보다 영성체 행렬 때의 음악은 쉽고, 자유롭게 그리고 기쁘게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 많은 예식이나 말들, 많은 노래는 신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그들의 신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교회의 경우 미사 때에 부르는 행렬노래 가운데 입당노래와 퇴장노래는 너무나 소홀히 취급하여 겨우 한 절만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하면, 예물준비(봉헌) 노래와 영성체 노래는 너무 많이 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곡을 안내하여 두세 곡의 노래를 연이어 부르게 하는 이러한 관습은 신자들이 노래 부르기에 바빠 조용히 기도에 빠져들기 어렵게 만든다. 음악을 준비하는 사람은 신자들이 영성체를 한 뒤에 개인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2. 감사예식

 

이 예식은 감사 침묵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로 진행된다. 「총지침」 88항은 성체 분배가 끝나면 사제와 신자들은 잠시 동안 속으로 기도를 바칠 것을 명하고 있다. 따라서 사제와 교우들은 이 침묵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고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한다. 미사 중 여러 번 침묵이 있으나 영성체 후의 침묵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침묵을 아예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짧게 하거나, 묵상 안내, 악기 연주, 성가대의 특송, 아니면 공지사항 등으로 신자들의 묵상을 방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총지침」은 같은 항에서 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회중 전체가 시편 또는 찬양의 특성을 지닌 다른 찬가나 찬미가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자들, 특별히 사목자들은 비록 이 지침에 따라 노래를 부른다 하더라도 반드시 침묵 시간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침묵 시간은 개인이 감사를 바치기에 적합하며, 전체 신자가 노래하는 것은(성가대가 노래하는 것 역시 신자들의 노래이다.) 집단적인 감사의 표시가 될 것이기에 이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 

 

Music in Catholic Worship 72항은 교회가 감사 침묵 기도 시간 때에 사용하는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이 부분이야말로 성가대가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곳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무튼 성가대는 이때 ‘특송’이라 하여 라틴어 가사로 된 찬미가를 부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성가대가 부를 한국어로 된 가톨릭 합창곡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가대는 개신교의 창작 찬송가들을 가사만 가톨릭에 맞게 바꾸어 노래 부르는데, 문제가 많다. 라틴어 찬미가를 부르게 되면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사목자들과 교우들의 불평이 대단한 것이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찬미가를 들으면서 찬미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가는 말

 

우리는 지난 호와 이번 호에서 영성체 행렬 노래의 역사와 봉사적 기능 그리고 2002년에 새로 개정된 「총지침」이 영성체 노래로 추천하는 음악의 종류를 순위별로 살펴보았으며, 한국어 성가집에 수록된 노래들을 분석해 보았다. 

 

영성체 노래에 대한 이 글의 최고 관심사는 한국교회가 영성체 때에 사용하는 노래들이 과연 영성체 행렬 노래의 의미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들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교회의 영성체 행렬 노래는 “영성체를 하는 이들의 영신적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을 더욱 형제답게 만든다.”(1969년 「총지침」 56항(i), 87항)는 이 노래의 봉사적 기능을 충족시키는 찬미가는 소수에 불과하고, 성체를 오직 경배의 대상으로만 취급하여 성체를 흠숭하고 찬미하는 노래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신자 작곡가들이 분발하여 영성체 노래의 봉사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찬미가를 창작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아울러 작곡가들은 교회 전통이 하느님의 시(詩)라고 생각하는 시편, 그리고 대송과 후렴을 이용하는 찬미가들을 많이 만들어, 신자들이 편안하게 노래를 배우고 익혀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 교회에서도 영성체 행렬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는 가사를 가진 좋은 찬미가를 부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목, 2005년 9월호, 김종헌(대구대교구 성 김대건 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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