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이야기] 전례 안에서의 악기 사용 (1)
그레고리오 성가는 원래 악기의 반주 없이 단성부로 노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례기도문의 가사를 쉽게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으며, 화려한 분위기에 젖어들기보다는 기도문으로 된 가사를 묵상하며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라틴어를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적절한 예가 될 수 없겠지만, 어떤 성가를 반주 없이 가사에 집중하여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부르는 많은 찬미가들은 화성음악(여러 성부)으로 되어 있기에 악기의 반주를 필요로 합니다. 주로 오르간으로 이루어지던 반주가 요즈음에 와서는 특별히 청소년, 그리고 청년미사의 경우, 많은 본당에서 밴드로 대체되고 있는 중입니다. 조용히 기도하고 싶다는 분들은 전기 기타와 요란한 드럼소리 때문에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전례음악이 이래도 되는지 많은 걱정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밴드의 반주가 전례 안에서 문제는 없는 것일까요? 교회음악 문헌들을 통해서 짚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전례 때에 왜 악기를 사용하는가?
전례 때에 성가를 부르는 주체는 바로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입니다. 전례에 참석한 찬미공동체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성악)’야말로 최고의 음악행위로 간주됩니다. 신자들이 ‘하나의 소리,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는 행위 자체가 바로 예배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례 중에 악기를 사용하는 목적은 ① 신자들의 노래를 도와주고 ② 신자들의 참여를 쉽게 하며 ③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의 일치를 강하게 해 주는 데에 있습니다. 아울러 악기를 사용하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악기의 반주는 ① 악기 소리가 신자들의 노래 소리를 덮어버리지 않도록 하고 ② 가사의 이해를 혼란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며 ③ 집전사제나 봉사자들이 그들만의 경문을 큰 소리로 외울 때 악기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성음악훈령, 64항 참조, 1967년)
한 마디로 전례 때에 악기를 사용하는 목적은 “공동체의 기도를 도와주기 위함이며, 반주자들의 연주 자체를 즐기는 것에 있지 않다.(From Age to Age, 65항)”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례 때에 활동하는 밴드들은 미사 전례를 자신들의 연주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이 찬미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오로지 반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물론 독주의 경우는 다르죠.) 어떤 경우든지 자신들의 소리(악기 혹은 밴드의 노래 소리)가 신자들의 노래 소리를 덮어서도 안 되고, 자기들만 노래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전례 때에 어떤 악기들의 사용을 금하는가?
구약성경 특별히 시편은 예배에서 사용한 악기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에서는 인간의 목소리(성악)가 우선적으로 사용되었고, 악기는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세속음악에서나 사용하던 악기를 전례 안에 사용하게 되면 신자들이 도덕적으로 불미스러움을 연상하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8세기에 나타나 10세기부터 서방교회에서 사용된 오르간은 교회의 전통악기(비오 12세, Musicam Sacram Disciplina, 1955)로 간주되었으며, 지금까지 크게 존중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르간 이외의 악기들은 시대에 따라 사용이 가능하기도 하였고, 불가능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교황 비오 10세는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서’(1903년)를 통해 오르간의 사용은 허락하였지만 피아노의 사용은 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피아노는 타악기로 취급되었고, 피아노와 같이 소란스럽고 부적절한 악기들, 즉 북, 심벌, 트라이앵글 등의 사용을 금한 것입니다. 더구나 밴드를 교회 안에서 연주하는 것은 엄격히 금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의 ‘성음악의 원리(Musicae Sacrae Disciplina, 1955)’에서는, 오르간 이외의 악기들도 성음악의 고상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기 위해서만 사용을 허락할 수 있다고 하였고, 3년 뒤의 ‘성음악과 전례에 관한 지침(Instruction on Sacred Music and Liturgy)’에서는 현악기의 사용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음악에만 사용하기에 알맞다고 사람들이 동의하는 악기들의 사용과 기계적인 악기(automatic instruments; 자동 오르간, 전축, 라디오, 녹음기 등)나 기계의 사용은 전례의식은 물론 신심행사에도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이 규정은 현재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더 이상 어떤 악기를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전례 안에서의 사용을 금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오르간 이외의 악기 사용은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조건이란 사용하려는 악기가 ① 거룩한 용도(Sacred Use)에 적합하거나 적합해질 수 있고(거룩한 의식에 알맞고) ② 거룩한 예식(전례)의 품위에 어울리고 ③ 참으로 신자들의 성화(聖化)에 도움이 될 때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이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면 각 나라의 주교회의가 어떤 악기를 사용해도 좋다고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주교회의가 전례에 사용할 악기의 사용에 신중을 기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당의 사제나 밴드들 마음대로 악기의 사용을 결정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교회는 어떤 악기를 사용할 수 없는지 구체적으로 지명하지는 않지만, 본당의 사제나 밴드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는 무슨 이유로 악기의 사용에 대한 제약과 조건을 제시하였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여 현재의 본당 전례에서의 악기 사용에 관해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전례 때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신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본당에서 활약하고 있는 밴드들도 신자들의 기도를 돕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따라 부르지 않는 노래를 자신들만 마이크를 들고 크게 부른다든지, 전례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노래를 선택하여 전례와는 또 신자들과는 별개로 연주하는 행위는 신자들의 기도를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명심합시다. “좋은 음악은 신자들의 신심을 고양시키지만, 나쁜 음악은 신자들의 신심을 하락, 파괴합니다.(Music in Catholic Worship 6항. 1983)” - 다음 호에 계속
[월간빛, 2012년 5월호, 김종헌 발다살 신부(한티순교성지 전담, 가톨릭음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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