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4)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1535~1541, 프레스코, 1450×1300cm, 바티칸, 시스틴 경당.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곡가였던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 1992)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되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조성(장조, 단조)에 기초하지 않고 스스로 고안한 선법(Modus)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메시앙의 악보를 읽다보면 때로는 눈에 보이는 화성과 실제 연주되는 화성이 달라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그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주제가 없이, 단락별로 독특한 음악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상자로 하여금 고양된 마음, 부활한 자의 자유로움 등을 느끼게 하는 종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리비에 메시앙의 음악은 온통 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삼는 그의 음악은 다른 교회음악이 다루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보다는, 현세생활의 어려움이나 피할 수 없는 약함과 죄성보다는, 구원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주로 이야기한다. 바로 ‘영광’이 그의 음악적 신학의 중심이며, 복음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항상 전제되어 있다 : 탄생, 거룩한 변모, 부활과 승천, 성사 그리고 삼위일체. 무엇보다도 다가올 생명에 대한 기다림, 요한 묵시록에서 이야기하는 부활한 자의 본성, 천사, 천상 도시에 대한 바라봄이 특히 강조된다. 메시앙의 많은 작품 중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이러한 종교적, 음악적 특성을 온전히 담고 있다. 1940~41년 실레시아(Silesia)의 괴르릿쯔(Goerlitz)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구상되고 작곡되었으며, 또 첫 공연을 한 이 작품은 메시앙이 세상 공심판 전의 시간의 끔찍함을 음악적 형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요한 묵시록 10, 1-7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구름에 휩싸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서, 사자가 포효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가 외치자 일곱 천둥도 저마다 소리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일곱 천둥이 말하자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울려오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봉인해 두어라.’ 그러자 내가 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던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쳐들고서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을 두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그분의 신비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전체 8곡 중에서 4번째 곡을 중심으로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포로수용소에서 독일군 장교가 건네준 연필과 오선지에 바로 이 4번째 곡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4중주와 달리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그리고 클라리넷으로 구성된 이 곡은 같은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다른 세 음악가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 4번째 곡을 중심으로 다른 7곡을 작곡한 메시앙은, “7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6일간의 창조 후의 거룩한 날, 안식의 날을 의미합니다. 또한 안식일의 7은 나아가 영원성, 불변하는 빛이요 흔들림없는 평화를 의미하는 8을 향해 나아갑니다.”라고 서술하였다. 메시앙은 자신의 이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요한 묵시록에 대한 어떤 주석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시간의 소멸에 대한 나의 바람을 표현했을 뿐입니다.” 8곡의 제목은 이러하다. 1. 크리스탈 같은 전례(Liturgie de cristal) 2.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보칼리제(Vocalise,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du temps) 3. 새들의 나락(Abime des oiseaux) 4. 간주곡(intermede) 5.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미가(Louange a l’Eternite de Jesus) 6. 일곱 트럼펫을 위한 분노의 춤(Danse de la fureur, pour les sept trompettes) 7.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소용돌이(Fouillis d’arcs-en-ciel,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du temps) 8. 예수의 불멸성에 대한 찬미가(Louange a l’immortalite de Jesus)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Tip 올리비에 메시앙은 프랑스 파리 생트리니테성당 오르간 연주자로 60년 이상 일하면서 수많은 오르간곡을 써 ‘바흐 이래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오페라와 피아노곡, 성악곡, 관현악곡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메시앙의 유일한 실내악곡이다. 연주 시간은 약 48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이블마다 하나쯤은 음반을 내놓았다. 특히 메시앙의 부인인 이본 로리오가 피아노를 연주한 1991년 녹음 음반(EMI)은 메시앙 자신이 직접 레코딩에 참여,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음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사 제작 음반이 많이 수입돼 있으며, 국제적인 클라리네티스트 미셸 아리뇽이 연주에 참여한 1987년 녹음 음반도 들어볼만 하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이 곡의 작곡 당시의 실화를 담은 동화집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맑은 가람/8천원)이 출판된 바 있다. 젠 브라이언트의 시적인 묘사와 벡스 펙의 파스텔화를 통해 보는 이야기는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편 메시앙을 언급할 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메시앙 음악의 국제적 권위자인 폴 김(한국명 김성일)을 빼놓을 수 없다. 메시앙은 스스로도 생전에 폴 김에 대해 “나의 음악을 살아있는 리듬과 화려한 음색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피아니스트”라고 격찬했다. 또 폴 김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메시앙의 피아노 전곡 시리즈 음반을 내놓아 음악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2008년 메시앙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는 메시앙의 음악 연구와 다채로운 음악 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8년 2월 24일, 주정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