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9) 몬테베르디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찬미하는 저녁기도(Vespro della beata Vergine)
눈부신 5월 성모님께 드리는 찬미기도 -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 몬테베르디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찬미하는 저녁기도'로 산마르코 대성당 약장직을 얻어 30년간 그곳에서 서양음악사에 길이 빛날 업적들을 남겼다.
- (오른쪽아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초상화.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정신을 가장 생생하게 구현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4월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온갖 꽃은 사라지고, 5월에는 그 떨어진 꽃들의 자리를 싱싱한 연초록 잎들이 더욱 찬란하게 채운다. 일년 중 가장 눈부신 5월. 바로 성모님 성월이다. 이달에는 저녁 바람이 기분 좋게 서늘한 시간에 이탈리아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성모님 저녁기도’를 기도하듯 들어보면 어떨까?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찬미하는 저녁기도’라는 긴 제목을 지닌 이 작품은 경건하면서도 화려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그리고 형식면에서도 아주 독특한 작품이다.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성무일도’에는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바치는 여덟 단계의 기도(시과時課)가 있는데, 하루의 마지막 기도는 종과(끝기도), 그 바로 앞이 만과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 성무일도도 다섯단계로 간소화되었지만 저녁기도 전례는 여전히 남아있다. 과거 유럽에서는 여러 작곡가들이 미사곡을 작곡하듯 이 저녁기도를 작곡해 전례에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몬테베르디의 이 ‘성모님 저녁기도’는 특별히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시편 제70편의 첫 구절 “하느님, 나를 살려 주소서, 야훼여, 빨리 오시어 나를 도와주소서…” 로 시작되는 이 ‘저녁기도’의 첫 곡(입당송) 합창은 듣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아름답고 힘이 넘친다. 이 뒤를 잇는 다섯 편의 시편송은 ‘야훼께서 말씀하셨다(Dixit Dominus)’(110편), ‘야훼의 종들아, 찬양하여라(Laudate Pueri)’(113편), ‘야훼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노라(Laetaus sum)’(122편),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 하시면(Nisi Dominus)’(127편), ‘야훼를 찬양하여라(Lauda Jerusalem)’(147편) 들이다. 일반적인 ‘저녁기도’에는 시편 다섯 편에 찬미가와 마니피캇이 덧붙여진다. ‘성모 찬가’라고도 불리는 마니피캇은 엘리사벳에게서 그리스도의 잉태를 축하 받고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합니다…”라고 답하는 루카 복음 1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몬테베르디의 ‘저녁기도’에는 시편송 다섯 편 외에도 아가서(솔로몬의 노래)의 ‘나 비록 가뭇하지만(Nigra sum)’(1장 5절), ‘그대, 나의 짝은 아름답고(Pulchra es)’(6장 4절), 이사야서 ‘두 천사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Duo Seraphim)’(6장 3절)가 시편 사이사이에 섞여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이여, 들으소서(Audi, coelum)’ 등의 모테트 네 곡이 들어있고, 마니피캇도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이다. 이름은 ‘저녁기도’지만 이들 작품은 단순한 저녁기도만은 아니었다. 성모님의 탄생, 성모영보(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를 잉태하리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한 사건), 성모님 승천 등을 기리는 각각의 성모님 축일 저녁 전례 때는 이 저녁기도가 미사 때의 통상문과 같은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중세까지 서양의 작곡가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음악을 사용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음악은 하느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비밀과 깊이를 표현하는 매체가 되었다. 그러자 ‘열정의 표현’이 작곡가들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조숙한 천재 작곡가 몬테베르디는 열다섯살 때 이미 완벽한 미사곡을 발표할 정도로 교회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르네상스 정신을 음악에서 가장 생생하게 구현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오르페오’나 ‘포페아의 대관’에서 드러나듯 드라마의 요소를 음악에 도입한 그의 시도는 교회음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졌다. 드라마틱한 합창과 합주를 사용해 몬테베르디는 단순하고 차분했던 당시의 교회음악에 빛나는 색채감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당대 교회음악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명료한 선율을 사용해 가사를 알아듣기 쉽게 작곡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성경구절이나 기도문의 내용이었고, 음악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종교적인 내용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몬테베르디 역시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옛 음악 형식을 고수했지만, 이 확고하고 생산적인 형식의 기반 위에서 그는 ‘열정의 표현’을 위한 찬란한 극적 음악을 창조했다. 이 ‘성모님 저녁기도’는 옛 형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놀라운 진보를 이룩한 몬테베르디 최고의 걸작이다. 엄격한 음악적 전통과 새 시대의 표현법을 절묘하게 혼합했기 때문이다. 1590년부터 20년 동안이나 만토바의 곤차가 공작 밑에서 악장으로 일하며 근근히 살아가던 몬테베르디는 1610년, 이 공들인 ‘저녁기도’를 교황에게 헌정하며 바티칸 악장 지원서로 제출했다. 아쉽게도 바티칸은 그를 악장으로 뽑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3년 뒤 몬테베르디는 이 작품으로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 악장직을 얻어, 이후 30년간 그곳에서 서양음악사에 길이 빛날 업적들을 남겼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씨] Tip 오페라를 이야기할 때 흔히 두명의 베르디를 언급한다. 우선은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으로 오페라의 대중화를 이끈 주세페 베르디. 그리고 또한명의 베르디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대중적인 오페라의 문을 연 인물이다. 그는 지금과 같은 오페라의 요소들을 갖춘 종합예술 작품을 처음으로 내놓으며 본격적인 오페라 시대를 열었다. 또 대중적인 오페라 부흥을 위해 세계 최초의 오페라극장인 산카시아노 극장을 베네치아에 건립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호 ‘쉽게 듣는 교회음악’에서도 알 수 있듯, 몬테베르디는 교회음악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성모 마리아의 저녁기도’는 지난 2006년 10월 전곡이 한국에서 초연된 바 있다. 무대는 가톨릭인터넷 굿뉴스의 개통 9주년을 기념, 서울 명동성당에서 각종 교회음악단체와 솔리스트들을 초청해 마련한 묵상음악회였다. 1989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에서 공개녹음된 음반은 세계적인 명반으로 꼽힌다. 존 엘리어트 가드너가 지휘하고 몬테베르디 합창단, 런던 오라토리오 소년합창단, 더 잉글리쉬 바로크 솔리스츠 오케스트라 등이 연주한 이 실황녹음판은 몬테베르디 시절 초연됐던 성당에서 재현함으로써 음색의 대비와 입체감이 더욱 잘 살아있다는 평을 받았다. 성마르코 대성당 천장화의 일부분으로 꾸민 음반 표지도 눈길을 끈다. BBC에서 편집 발매한 바로크시대의 교회음악 모음 음반 ‘MASTERS OF THE VENETIAN BAROQUE’도 한 장쯤 소장할만 하다. 음반에는 몬테베르디와 비발디 등의 유명음악가들의 교회음악이 수록돼 있다. 또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인 조르디 사발의 지휘로 1999년 발매된 음반(Alia Vox)도 깊이있는 해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유명 음반상인 디아파종 황금상을 수상한 음반이기도 하다. [가톨릭신문, 2008년 5월 4일, 주정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