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15)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Ave Maria)’
간절히 어머니를 부르는 인류의 노래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모영보(L’annunciazione)', 1472~1475, 98×217cm,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아베 마리아’라는 말이 들어있는 노래는 수없이 많다. 가톨릭 성가 뿐 아니라 뮤지컬이나 유행가요의 노랫말에도 종종 쓰인다.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무대에서 절절하게 외쳐 부르던 ‘아베 마리아’도 한때 히트곡이 되었고, 라트비아의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베 마리아’가 가사의 전부인데도 여러 해 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째서 ‘아베 마리아’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신앙이 없는 사람 모두를 위로하는 온 인류의 노래가 되었을까? 처녀인 채로 구세주를 잉태하게 된 당혹감, 자신의 몸으로 낳은 외아들의 참혹한 십자가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괴로움. 그런 특별한 인간적 고뇌를 짊어진 어머니였기에, 누구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막연히 성모 마리아께 의지하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1475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영보 L’annunciazione’를 보면 천사는 오른손을 세운 채 단호한 표정으로 처녀를 응시하고 있고, 왼손을 들어올린 처녀는 놀랍고 곤혹스런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 천사는 입을 열어 “아베 마리아!”라고 처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라틴어의 ‘아베(ave)’는 ‘안녕’이라는 뜻의 인사말이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 1, 28). 가브리엘 천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다 빈치는 나중에 ‘성모영보’를 다시 한 번 그렸다. 마리아가 천사 앞에서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다. 충격의 순간이 지나간 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루카 복음을 계속 읽어보면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임신 여섯달째였던 엘리사벳이 성령을 받아 외치는 대목이 나온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과 엘리사벳의 이 인사를 합쳐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는 ‘성모송’의 토대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찬미하고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 주실 것을 간청하는 두 가지 주제의 이 성모송은 원래 6세기경에 만들어졌으나 1568년 교황 비오 5세가 이를 ‘성무일도’에 수록하면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성모송은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아베 마리아’라는 노래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6세기 작곡가인 아르카델트나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도 유명하지만 특히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앞다투어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다. 리스트, 슈베르트, 구노, 브루크너, 생상스 등이 그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다. 구노는 원래 자신의 ‘아베 마리아’를 기악곡으로 작곡해 ‘바흐의 평균율곡집 제1 프렐류드에 관한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후에 여기에 라틴어로 된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Ave Maria, gratia plena…)”이 가사로 붙어 노래로 불리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오늘날 구노의 ‘아베 마리아’와 같은 라틴어 성모송 가사로 불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1825년에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했을 때 가사로 택한 것은 성모송이 아닌, 스코틀랜드 작가 월터 스코트의 1810년작 장편 서사시 ‘호수의 아가씨(The Lady of the Lake)’에 나오는 ‘엘렌의 세 번째 노래’를 독일어로 번역한 텍스트였다. 3절로 된 시의 1절은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아베 마리아! 자애로우신 성처녀여! 처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당신은 이 험한 땅에서 바치는 기도를 들으시고 절망의 한복판에서 저희를 구해 주실 수 있겠지요. 쫓겨나고 버려지고 모욕당한 저희들이지만 두려움 없이 잠잘 수 있도록 당신께서 지켜 주소서. 성처녀이신 마리아여, 처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어머니시여, 당신께 간절히 애원하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아이반호’의 작가로 유명한 월터 스코트의 이 작품에서는, 호수의 작은 섬에 은거 중인 스코틀랜드 공작의 딸 엘렌이 아버지와 연인의 목숨을 살리려 성모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성모에 대한 찬미의 가사와 정제된 선율로 우리의 마음을 맑게 승화시켜 준다면,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와 애잔한 선율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노래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어느 때보다도 가난과 병마에 처절하게 시달리던 스물여덟 살 때 작곡한 것으로, 그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어난 희망의 선율이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 Tip 슈베르트가 작곡한 당시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준 ‘아베 마리아’는 슈베르트 자신도 즐겨 연주한 곡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아베 마리아는 구노와 카치니 아베 마리아와 비교했을 때 가장 노래다운 멜로디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사 안에서 ‘아베 마리아’라는 곡 만큼 작곡가와 더불어 연주가가 많은 곡도 드물다. 현대에도 여러 작곡가들의 아베 마리아가 연주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슈베르트의 곡은 유명 소프라노 등이 대형무대에서 한번쯤은 꼭 선보이거나 음반에 싣는 곡으로 통한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는 지난 2006년 4월 4일, 프랑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앙코르곡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조씨 아버지의 장례식날과 겹쳤지만 일정 변경은 불가능했다. 조씨는 “서울에서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버지도 제 노래를 잘 듣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간절한 호소의 느낌 가득히 아베 마리아를 불러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용숙 칼럼니스트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감상을 위해 보이소프라노 다니엘 페레의 음반(튜너, 1995)을 우선 추천한다. 알폰스 폰 아르부르크가 지휘하고 취리히 소년합창단 등이 협연한 음반이다. 또 헬무트 프로쉬아우어 지휘, 다비드 코르디에의 독창, 퀼른 방송교향악단과 빈소년 합창단의 연주로 출시된 카프리치오 음반도 음색이 뛰어난 편이다. 이밖에도 성바오로딸 미디어가 출시한 ‘아베 마리아 트리니타스 합창단’ 음반은 슈베르트를 비롯해 여러 작곡가들의 아베 마리아를 한데 담고 있다. 또 ‘아베 마리아’(2006) 개정판을 통해서는 일반적으로 독창곡이나 합창곡으로 듣던 유명 아베마리아 11곡을 기악곡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08년 8월 17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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