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294번 “모든 성인 성녀시여”
11월 1일은 교회력 안에서 축일이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념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이 축일은 기원 후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이 로마에 있는 판테온 신전을 그리스도교 성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축성하면서 재정하였다 합니다. 아마도 다신교 전통의 로마 문명에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모든 신들에게 바치는 집’이라는 의미의 판테온 신전을 그리스도교 성전으로 축성하면서 ‘모든 신들’이 아닌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에는 5월 13일을 축일로 지내다가 후에 그레고리오 3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전의 부속 성당을 모든 성인들을 위해 봉헌하면서 11월 1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어, 교회가 보편적 교도권을 가지고 그 성성(聖性)을 공인한 사람을 말합니다. 신약 성경의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2절에서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하여 ‘성도(聖徒)’ 또는 ‘성스러운 사람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바람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상 여정을 통해 거룩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봉헌되기를 바라는 간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는 지름길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이 시대의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소박하지만 위대한 이 시대의 성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가톨릭 성가 294번 “모든 성인 성녀시여”를 이 달의 성가로 선정하였습니다.
라장조에 4/4박자 리듬인 이 성가는 당당한 기품과 유쾌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4분 음표와 8분 음표로 이루어져 있어 간결한리듬감을 가지고 있지만, 성가의 구성이 매우 자유롭고 그 진행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선율을 쉽게 익혀 노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선율 진행에 따른 화성을 살펴보아도 화음의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며, 때때로 불완전한 화음의 조합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유로운 선율 진행과 긴장감을 부여하는 화음 구성은 이 성가만이 가지고 있는 기품과 유쾌함을 표현하는 훌륭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성가는 앞서 언급했듯이 선율의 진행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화음을 빠짐없이 분명하게 연주하는 성가 반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성가를 합창할 때에는 소프라노 파트의 선율을 더욱 더 강조해서 노래해야 화음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다른 파트가 자신의 선율을 자신 있게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가는 셈여림이 일정하기 때문에 악상의 변화에 주의하지 않으면서 일정한 세기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당하고 기품 있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절도 있게 노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는 희망이 가득한 믿을 교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과 연옥에서 구원의 날을 기다리는 영혼들 모두가 교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이들이 기도와 희생으로 서로를 도울 수 있게 결합되어 있다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영혼은 하나로 묶여있고, 서로가 쌓은 공로를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은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구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교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영혼들, 그것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11월호, 황인환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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