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성가] 가톨릭 성가 115번 "수난 기약 다다르니" 한국교회 초기에 부르던 성가들은 독일계통의 것과 프랑스계통의 것들로 분류됩니다. 독일계통은 주로 4박자의 것이 많고, 프랑스계통의 것은 3박자나 6박자의 것이 많습니다. 이 성가는 작곡자가 깡프라(Campra)라고 적혀있는 것과 또 3박자인 것을 보아 프랑스계통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무겁거나 느리게 불러서도 안 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빠르게 부르면 사순절의 분위기 보다는 3박자의 춤곡처럼 느껴질 것이기에 절제하여 불러야 하겠습니다. 이 성가와 함께 은혜 가득한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스꽝스러웠던 기억 이야기입니다. 50여 년 전의 겨울은 매우 추웠습니다. 그 호된 추위 중에도 2월이 되면 사순절은 어김없이 찾아와서 어린이들의 허기를 더욱 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해서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절에, 어른들이 엄격한 교회법규를 지키는 사순절의 단식재와 금육재를 덩달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소리소리 지르며 부르던 성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계절의 성가로 소개하는 ‘수난기약 다다르니’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 성가를 불러야만 사순절이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납니다. 요즈음에야 먹을 것도 넉넉하고 난방도 잘 되며 단식이나 금육의 규정도 쉽게 풀어져서 별 고통이 없는 사순절을 지냅니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언제나 주님의 고통에 나의 작은 희생을 가지고 참여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2월 6일이 재의 수요일이며 사순절의 첫날입니다. 또 이 성가를 부르게 됩니다. 유럽의 성가책을 보면 사순절 성가와 수난성가는 구별되어 있습니다. 사순절 성가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전까지 부르며, 성주간에는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가사 내용으로 하는 수난성가들을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 성가집에는 124번 ‘은혜로운 회개의 때’ 한 곡만 빼고는 모든 사순성가들이 다 수난성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순절 시작부터 성주간 노래를 부릅니다. ‘수난기약 다다르니’도 역시 그 가사 내용을 보면 수난성가입니다만 오랜 관습에 따라 별다른 생각 없이 재의 수요일부터 부르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적엔 이 성가의 가사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절)수난기약 다다르니 산에로 피해 가시어 ... (2절)거룩하온 주 예수를 아문에 끌고 들어가...” 라는 가사를 부르며, 수난기약이 무슨 약일까 하고 생각했고, 아문이라는 발음에서 느끼는 대로 아문이 무슨 아름다운 문인 줄로 알았습니다(아문衙門:관청, 대사제의 저택). 또 단조로 시작되는 첫 부분을 조용히 부르다가 후렴인 “우리 죄를 대신하여”에 와서는 잠시 장조로 바뀌는 탓에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했습니다. 지금은 알아듣기 쉽게 가사를 손질한 덕분에 편하게 노래합니다만, 그래도 가사의 내용을 한번쯤은 따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08년 2월호, 백남용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