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성가] 가톨릭 성가 68번 “기쁨과 평화 넘치는 곳”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낙엽이 흩날리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이때, 교회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우리 자신의 죽음도 깊이 생각해보기를 권합니다. 자연히 마음이 가라앉고 의기소침해진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의술이 발달하고 식생활이 좋아지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옛날보다 30년 정도 늘었습니다. 옛날에는 60세까지 사는 분들이 적어서 환갑잔치를 했다면, 이제는 90세까지 사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니 구순잔치를 해야 마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승에 대한 미련은 점점 더 커 갑니다. 의술이 무한히 발달해서 건강하게, 아주 오래오래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처럼 건강에 집착하는 때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권위도 정당한 의술의 발전이라면 바람직하게 여기고 때로는 이를 주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성직자들도 또 수도자들도 건강하게만 살 수 있다면 끝없는 장수를 마다하지 않을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일까요? 어느 종교이건 간에 종교의 근본 가르침은 결국은 사후세계에 대한 가르침이고 이를 통하여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내세를 가르치고, 죽음은 내세로 건너가는 문에 불과하며, 내세는 현세보다 월등히 행복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증명된 내세를 제시하며, 행복한 천국이 우리의 목적지라고 가르칩니다. 이 믿음이 정립되어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오래 사는 것 보다는 보람 있게 잘 사는 것을 먼저 바라고, 때가 되면 본 고향인 천국으로 훌훌 털고 떠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찍 죽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생에 대한 지나친 애착, 지나친 건강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자는 뜻입니다. 이런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담은, 그러면서도 부르기 쉬운 성가가 바로 ‘기쁨과 평화 넘치는 곳’입니다. 가사를 개정하기 전에는 “아, 언제나 그리운 내 본향 찾아가 사랑하오신 천주 영원히 모시리. 우리의 모든 원이 이뤄지는 그곳, 날개를 내게 주사 오르게 하소서.”라는 가사였습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우리의 본 고향, 그곳을 그리워해서 날개를 달고서라도 날아가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성가는 그래서 지금도 위령미사에서도 불리고, 또 연중시기 성가로 미사의 파견성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전통성가라고 적혀있는 이 곡의 출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곡은 음역이 넓지 않고 박자도 단조롭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아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모든 소망” 부분 중에 ‘모든 소망’의 ‘시(Si)’음을 흔히 ‘도(Do)’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만 조심한다면 위령성월의 참 뜻을 새기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08년 11월호, 백남용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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