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214번 "주께 드리네" 우리 가톨릭 성가집에는 개신교에서 가져온 성가가 여럿 있습니다. 가장 많이 불리는 곡 중의 하나가 바로 214번 ‘주께 드리네’가 아닐까 합니다. 이 곡은 나운영 선생(1922-1993)의 성가곡으로서, 일반 신자들이 부르기에는 조금은 버거운 선율을 가지고 있으나, 음악적으로는 가사의 내용을 선율에 잘 담아 실은 훌륭한 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개신교 신자였던 나운영 선생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에서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을 남기신 선생께서 한 때는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일본의 동경 제국 고등 음악학교에서 음악을 공부를 하신, 당시로서도 몇 안 되는 음악의 인재였던 선생께서는 어려서는 구세군 교회를 다녔지만 일본 유학 후 귀국한 해인 1943년에 혜화동 성당에서 지휘를 하게 되면서 천주교와 인연을 맺습니다. 이 혜화동 성당은 이후로 김대붕, 최병철, 박동욱과 같은 일반 음악계에서도 이름이 나 있는 천주교 신자 음악가들을 길러내는 산실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운영 선생은 23세가 되던 해인 1944년 6월 4일에 혜화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이후 사제가 될 마음을 먹을 정도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듬해에는 개신교 신자였던 성악가 유경손 선생과의 혼례도 명동성당에서 치르는 등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나, 1946년에 개신교로 개종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개신교 잡지인 ‘신앙계’ 1977년 12월호에 실린 ‘음악과 신앙으로 점철된 내 생애’ 중 한 부분에 잘 나와 있습니다. 1946년 9월에 선생은 가톨릭 교리에 대한 의문이 생겨 그 문제를 신부님께 물었으나 신부님은 무조건 믿으라고만 하였답니다. 하지만 선생은 그 의혹을 풀어야겠다는 강한 집념 때문에 가톨릭 서적을 구해 읽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생각되면 빨간 밑줄을 그어서 신부님께로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의심하는 그 자체가 죄요, 가톨릭을 비판하는 책을 읽는 것도 죄라며 나운영 선생의 답답한 심정을 묵살하였습니다. 결국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어느 날 고해성사를 하고 돌아와 그때부터 개신교로 개종하였고, 그 후 북창동에 있는 서울교회(현 한양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게 됩니다. 이 때 신부님께서 잘 설명해 주셔서 이렇게 좋은 인재를 우리 교회에 남도록 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214번 ‘주께 드리네’는 선생께서 개종한 후 1949년 10월 27일 헌금찬양을 위해 작곡한 곡입니다. 당시의 찬송가 71장의 가사(작사자 Van De Venter)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새 전례 가톨릭 성가집(1975)’에 실리게 되면서 개신교보다 오히려 우리 천주교에서 더 많이 부르고 있는 곡입니다. 원곡은 내림 나장조이나 일반 신자들이 조금 더 부르기 편하도록 한 음을 내려서 우리 성가집에는 내림 가장조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모두 같은 것입니다. 또한 비록 개신교 신자의 곡이었다고 하더라도 한 때 천주교에 몸담아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셨던 선생님의 곡이 우리 교회 안에서 계속 불리는 것 또한 주님 안에 일치된 모습을 보이는 좋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0년 2월호, 이상철 신부(가톨릭대학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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