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138번 "만왕의 왕" 부활시기 중에 자주 불리는 곡 중의 하나가 바로 138번 ‘만왕의 왕’입니다. 이 노래는 개신교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에 생긴 곡입니다. 당시 우리 가톨릭교회는 전례를 거행할 때 주로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안 성가나 다성음악을 성직자나 수도자 혹은 다성음악을 훈련받은 전문 합창단이 노래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따라서 이 성가들은 일반 신자들이 노래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특별히 칼빈은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켜 전례나 집회에 참여하는 신자 대중이 성경의 시편을 자기들 언어로 함께 노래하도록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즉 특별한 박자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박자있는 곡으로 바꾸거나 일반 세속곡의 선율을 따와서 거기에 시편을 가사로 집어넣거나 혹은 새로 선율을 만들어서 시편 가사를 붙이는 시도를 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이 함께 노래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는 프랑스와 스위스 제네바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는데, 이를 바탕으로 1533년부터 1543년 사이에 시편 가사를 지닌 성가들이 여럿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가들을 한데 묶은 성가집을 ‘Genevan Psalter(제네바의 노래집)’이라 부릅니다. 최종적으로 150편의 시편이 집대성되어 완간된 것은 1562년의 일입니다. 이렇게 시편에 선율을 붙인 성가 중에서 가장 유명해진 곡 중 하나가 있는데, ‘Old 100th’라는 노래입니다. 이 곡은 1551년에 나온 ‘제네바의 노래집’ 2판에 처음 수록되었고, 음악가였던 부르주아(Bourgeois)가 이 선율을 써 넣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가사는 본래 시편 134편의 내용이었지만, 윌리엄 케스(William Kethe)라는 이가 ‘땅 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아’라는 제목으로 시편 100편의 가사를 붙이면서 ‘Old 100th’로 알려지게 됩니다. 물론 이 두 시편은 모두 주님을 찬미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성가집에는 클라우디오 구디멜(Claudio Goudimel)이 작곡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그는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이 아니라 화음을 넣어 편곡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 선율을 4성부로뿐만 아니라 다성음악적으로도 상당히 다양하게 만들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구디멜은 르네상스 시기의 프랑스 작곡가인데, 1549년에 파리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사람으로 본래 가톨릭 신자였으나 1557년에 메츠로 이사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합니다. 그후 리옹에 자리를 잡았지만 1572년에 파리에서 시작된, 가톨릭의 칼빈파에 대한 대학살 사건 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대학살 사건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프랑스의 종교전쟁 중 가톨릭에 의해 적게는 5천 명에서 많게는 3만 명으로 추정되는 ‘휴그노(프랑스와 제네바의 칼빈파 신도)’들이 학살당한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사건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성가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1965년에 나온 성공회 성가집이며(우리 성가집에는 3/4박자인 반면 성공회 성가집에서는 2/4박자로 나타납니다), 1956년에 나온 정선 가톨릭 성가집에는 바흐의 코랄 편곡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 박자 편곡과 가사는 누가 붙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학살당했던 이가 손을 보았던 성가가 오늘날 우리 가톨릭 성가집에 실려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아이러니하게 보입니다만, 같은 하느님을 모시고 섬기는 형제적 입장에서 이 성가는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0년 10월호, 이상철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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