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6) 92번 구세주 내 천주여
어두운 이 땅에 구세주 내려오시길 - 92번 성가 ‘구세주 내 주 천주여’의 첫 출판 악보.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가톨릭성가」 92번 성가인 ‘구세주 내 주 천주여’는 이 구절이 실린 이사야서 63장 19절의 말씀이 배경이 되는 성가이다. 본래 독일에서 유래한 이 성가의 제목은 “오 구세주여, 하늘을 넓게 찢으소서(O Heiland, reiß die Himmel auf)”로, 구세주께 하늘을 열고 이 땅 위로 내려오시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이 시는 예수회 신부였던 스피(Friedrich Spee, 1591~1635)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22년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린이(Das Allerschnste Kind in der Welt)」라는 책에 수록돼 처음 출판됐다. 책에는 저자가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스피 신부가 출판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시는 1618년에서 1648년까지 유럽 지역에서 벌어졌던 ‘30년 전쟁’과 역병, 그리고 마녀 재판과 같은 당시 사회의 그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인 지방에서 출생한 스피 신부는 예수회 사제로서 파더본대학 등에서 교수와 사제로 활동했다. 마녀 재판에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그는 고문이 진실을 얻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나선 첫 번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마녀나 주술사가 아니라는 단 하나의 이유는 고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으며, 마녀 재판에 관한 비판과 논쟁을 담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대림시기 성무일도에서 사용했던 ‘오 안티폰’처럼 ‘오’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1연은 ‘오, 구세주여’, 2연은 ‘오, 하느님이여’, 3연은 ‘오, 땅이여’, 5연은 ‘오, 밝은 태양이시여’로 각각 시작한다. 이 시는 애초에 독일의 또 다른 찬미가였던 “하느님, 모든 별의 창조주시여(Gott, heilger Schpfer aller Stern)” - 대림시기 성무일도 중 저녁기도의 찬미가인 “Conditor Alme Siderum”의 독일어 번역 의 선율에 얹어서 불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선율과 합쳐진 형태로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가들을 혼합해 1666년 독일 라인 지방에서 출판된 「독일 라인 지역의 가톨릭 성가집(Catholisches Gesangbuch Rheinfelsisches Deutsches)」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선율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스피 신부가 쓴 이 성가의 가사는 1623년 독일 쾰른에서 출판된 「독일 영가집」에도 수록돼 있다. “오 구세주여, 하늘을 넓게 찢으소서. 그 하늘에서 내려오소서. 하늘의 입구와 문들을 찢으소서. 묶여있고 잠겨있는 것들을 부수소서”라고 노래하며 구세주께 어두운 세상을 뒤엎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1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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