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291번 “사도 성 베드로와 바오로” 찬미 예수님! 이달의 성가는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맞아 291번 <사도 성 베드로와 바오로>로 정했습니다. 옛 교부들의 문헌에서 이름 없이 ‘사도께서’라고 표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베드로 사도께서’나 ‘야고보 사도께서’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사도께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이 사도는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만큼 바오로 사도의 권위가 대단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서의 업적이 너무나도 크고, 또 극적인 회심 사건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 ‘회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교회를 박해하는 데 앞장서다가 가장 열정적인 사도가 되었다는 회심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를 박해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온전히 나쁜 사람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교회를 박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에 나오는 그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혈통으로는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율법으로는 누구보다도 열성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실수’를 한 것입니다. 아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잘 몰랐기 때문에 과오를 저지른 것이지, 그의 인품 자체가 나빴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율법)을 따르려고 하였고,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또 실제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훗날 훌륭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그러합니다. 실제로 그의 <고백록>을 꼼꼼히 읽어 보면 그가 마니교에 빠진 이유는 몇 가지 교리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었고, 몇몇 실수 이외에는 언제나 진리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과 단 한 번 만나서 극적으로 회개한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암브로시오 성인의 강론을 들으면서 서서히 변화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극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며 올바른 것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를 때 서서히 선(善)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변화는 흔치 않으며, 실제 회개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미신적이고 극적인 - 나쁜 의미에서의 기적적인 - 변화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것부터 구체적으로 올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함으로써 사람은 서서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번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에는 진정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묵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1월호, 송재영 신부 (이문동 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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