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성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
따름 노래(마태 21,9 참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이스라엘 임금님, 높은 데서 호산나! 따름 노래 1 히브리 아이들이 올리브 가지 손에 들고 주님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환호 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따름 노래 2 히브리 아이들이 옷을 길에 깔고 외치는 소리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찬미 예수님! 이달에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제가 입장할 때 부르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과 행렬 때 부르는 「히브리 아이들」은 선율이 매우 아름다운 곡입니다. 성경 말씀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를 가사로 만든 노래들입니다. 이 노랫말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이 구절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가슴은 기쁨과 희망으로 벅차올랐고, 그 감정은 환호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에 겉옷을 벗어 깔았습니다. 이를테면 ‘즉석 레드 카펫’인 것입니다. 더할 수 없이 열렬하게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예수님을 환호하던 백성들이 돌변하여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게 된 것일까요?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이 180도로 뒤바뀌었을까요? 이들은 메시아가 오면 각자가 가진 욕망을 채워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다윗 솔로몬 시대의 번영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열두 지파가 다윗 후손의 통치 아래 다시 한 나라가 되고,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를 모두 제압하여 강대국이 되며, “은(銀)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을”(1열왕 10,21) 정도로 풍요롭던 시대, 바로 그 시대가 다시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그분은 그러한 인간적인 욕망을 채워 줄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마르 12,17),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루카 6,24),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루카 6,29),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루카 18,22)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 실망으로 이어졌고, 이 실망감은 예수님을 없애려고 했던 권력자들의 선동에 분노로 바뀌어 결국 그분을 증오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메시아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욕망을 채워 줄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면,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세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 27,22)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뜻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는지,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기를 원하는지 말입니다. 가사를 곱씹으며 뜻 깊은 사순 시기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2월호, 송재영 신부(이문동 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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