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카치니의 작품이라 알려진 아베 마리아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었다. 해마다 우리는 이 시기에 의례적이면서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지나간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사이의 경계를 체험하곤 한다. 제야의 종소리가 그 예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새날은 조금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 4주간, 곧 대림 시기가 시작되는 첫 주일부터 교회의 새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어느 단체보다도 분주한 교회 공동체가 있다. 바로 성가대이다. 성가대가 교회 전례력 가운데 성가를 가장 많이 부를 때를 꼽는다면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 이다. 12월 24일 전야 미사를 시작으로 반나절 뒤인 25일, 대축일 미사를 드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성가대는 다른 미사 때와 다른 특별한 성가를 부른다. 이 전례에서 사용될 곡을 위해 대부분의 성가대가 성탄절 한두 달여 전부터 꼬박 연습에 매달린다. 성가대원들에게 이 연습 시기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긴 연습 동안 성가대원들은 노래를 통하여 다른 신자들보다 먼저 성탄의 기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고되기도 한 이 연습 일정은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 지나야 마무리된다. 아베 마리아에 대한 단상 이 여정을 마무리하며 성가대는 보통 성모님을 주제로 한 특송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성모님에 관한 수많은 찬미 노래가 작곡되었지만, 그 가운데 성모송을 가사로 작곡한 ‘아베 마리아’ 작품들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자주 등장하는 곡목이다. 미사 전례에 쓰일 노래를 고르는 일에는 노력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전례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겠지만 전례 시기에 적합한 것인지, 말씀 전례를 비롯하여 미사의 다른 전례와도 연결되는 내용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선택된 음악이 미사에 함께하는 신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헤아려 보아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성모송의 내용을 담은 아베 마리아 곡을 이 대축일 미사 때 부르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아베 마리아 곡이 모두 미사 전례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때의 일이다. 그날 미사의 영성체 후 묵상 때 성가대석에서 들려 온 노래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의 작품이라고 널리 알려진 ‘아베 마리아’였다. 이 곡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삽입 음악(OST)으로 쓰이면서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곡의 구슬픈 선율이 드라마 속 남녀의 사랑을 더욱더 애틋하게 했다.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는 이 곡이 국내외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데 한몫했다. 이 음악이 성당 안에 울려 퍼지자 평소와는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신자들이 2층 성가대석을 뒤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곡이 끝나자마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참례하며 처음으로 경험했던 뜻밖의 사건이었다. 작곡가가 뒤바뀌기까지 최근에 이 곡은 러시아 음악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가 1970년 무렵에 작곡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어떻게 해서 초기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카치니의 곡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먼저 이 곡의 만듦새를 보면, 16-17세기인 초기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다른 작품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바빌로프는 자신의 작품에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이름을 남기는 기이한 습성이 있었다. 이 곡은 1972년 구소련의 음반 회사인 멜로디야(Melodiya)를 통해 ‘작자 미상’으로 발표되었다. 1년 뒤 바빌로프는 세상을 떠났고, 다시 몇 년이 지난 뒤 한 오르간 연주자가 ‘새로 발견된 카치니의 악보’라고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뒤 이네사 갈란테, 안드레아 보첼리, 조수미를 비롯하여 전 세계 많은 성악가가 다투어 이 곡을 녹음했고,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음반이 발매되면서 카치니의 작품으로 굳어져 갔다. 점차 이 곡의 본디 작곡가를 의심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곡이 가진 낭만적인 양식이 카치니의 기존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결국 카치니가 작곡한 곡이 아니라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다. 그러나 이 곡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바빌로프의 아베 마리아’로 수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에서야 이 곡이 바빌로프의 곡으로 소개되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인지 이 곡을 여전히 카치니의 곡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곡이 무명 작곡가의 작품이면 어떻고 유명 작곡가의 작품이면 또 어떠하랴. 이 곡이 전 세계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선율이 차고도 넘친다. 문제는 이 곡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다. 카치니라는 이름이 가진 역사적 권위가 아니었더라면 많은 성악가가 이 곡을 녹음했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본론으로 돌아와, 바빌로프의 아베 마리아 곡은 전례에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가사 때문이다. ‘아베 마리아’라는 제목만으로 성모송의 기도문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곡은 그렇지 않다. 단순히 ‘아베 마리아’를 반복할 뿐 성모님을 찬송하는 어떠한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사실상 이 곡은 가사 없이 모음만으로 노래하는 형식인 ‘보칼리제’(vocalise)에 가깝다. ‘아베 마리아’의 반복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전례적인 의미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여전히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면 이 노래가 단골로 등장하는 걸까? 이 문제를 단순하게 ‘잘못된 일’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지만, 노래가 아름답다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또는 무비판적으로 차용하는 것은 아닌지,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전례에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는 신중히 따져 볼 일이다. 음악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은 종종 우리의 청각을 매혹한다. 하지만 세속의 음악과는 달리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선율보다도 선율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에 있다. 미사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가 과연 충분한 울림의 메시지를 미사에 함께하는 신자들에게 주고 있는지, 새해 첫날 긴 여정을 끝내고 한숨 돌릴 성가대 관계자들이 한 번쯤 짚어 볼 문제다. * 정이은 안드레아 - 음악학자. 국민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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