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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슈베르트의 미사 시작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2 조회수6,697 추천수5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슈베르트의 ‘미사 시작’

 

 

기쁨이 넘쳐 뛸 때 뉘와 함께 나누리 

슬픔이 가득할 때 뉘게 하소연하리

영광의 주 우리게 기쁨을 주시오니

서러운 눈물 씻고 주님께 나가리

 

‘미사 시작’이라는 소박한 제목의 성가 329번은 입당 성가로 부르기에 안성맞춤이다. 제목만으로도 퇴장 성가로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곡은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Deutsche Messe, D872) 여덟 곡 가운데 첫 곡이기도 하다.

 

「독일 미사」를 작곡한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년)는 음악사에서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죽기 1년 전인 1827년 이 미사곡집을 완성했다.

 

 

슈베르트 말년의 작품들

 

슈베르트는 너무도 짧은 생을 살았다. 1828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한 살에 지나지 않았다. 항생제가 없었던 19세기 초반,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매독이라는 성병이었다.

 

슈베르트가 처음 매독에 감염된 해는 1822년이었다. 그 당시 불치병이었던 매독은 서서히 슈베르트의 몸을 잠식해 갔다. 의사도 찾아보고 요양도 해 보았지만, 그 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1824년에 이르러 슈베르트는 자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 당시 슈베르트가 형 페르디난드나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에는 그가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또 그로 말미암아 얼마나 큰 절망에 빠졌는지 드러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예술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슈베르트가 택한 길은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작곡에 몰두했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작품 가운데 슈베르트의 ‘리트’(피아노 반주가 붙은 예술가곡) 대부분은 그가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까지 작곡한 곡이다. 그 반면에 기악 작품 대부분은 그의 생애 말엽에 쓰였다. 교향곡 8번 ‘미완성’, 교향곡 9번 ‘더 그레이트’,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 현악 사중주 G장조, 현악 오중주 C장조, 그리고 마지막 3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말년 작품들이다.

 

 

죽음을 앞두고 완성한 미사곡

 

흔히 ‘백세 시대’라는 말이 오가는 요즘, 기껏해야 30대 전후였을 슈베르트가 그의 ‘말년’을 의식했다는 것은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말년과 죽음에 대한 고찰은 사실 나이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자신의 불치병을 인지한 예술가에게 죽음은 그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을 마감하기 불과 1년 전 슈베르트가 한동안 작곡하지 않았던 종교 음악, 그것도 미사곡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는 십대 후반에 네 곡의 미사곡을 작곡한 뒤로 더는 미사곡을 쓰지 않다가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다섯 번째 미사곡을 작곡했다. 그뒤 종교 음악이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듯, 또 다시 이 장르의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죽음을 1년 앞둔 1827년 슈베르트는 불현듯이 이례적인 편성의 「독일 미사」를 내놓았고, 이어 세상을 뜨던 해인 1828년에 마지막 미사곡을 작곡했다.

 

미사곡을 작곡하지 않았던 사이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는 많이 달라졌다. ‘리트’ 작곡가로서 거둔 성공을 오페라로 이어 가고 싶었던 슈베르트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실패를 거듭한 뒤 그 꿈을 접었다. 그 대신 다시금 선택한 길은 베토벤과 같은 기악 음악의 거장이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자신의 꿈을 향한 노력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속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 「독일 미사」는 말년의 슈베르트가 기울였던 모든 노력과는 정반대의 곡인 듯하다. 슈베르트가 죽음을 앞두고 보여 준 극단의 형식적, 화성적 실험들이 이 작품에선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가 10대 시절에 흔히 썼던, 단순하고 소박한 오스트리아 민요풍의 음악이 이 「독일 미사」 전반에 흐른다. 가사도 라틴어가 아닌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이다.

 

 

‘미사 시작’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

 

슈베르트가 말년에 작곡한 음악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이 작품이 과연 그가 1827년에 작곡한 곡이 맞는지 질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난해해 보이는 그의 작품이다.

 

사실 19세기 중반 무렵 미사곡 작곡은 더 이상 작곡가들의 예술적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는 작곡가들에게 고색창연하게 보일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지난날처럼 작곡가들의 일터이자 그들의 예술 작업을 후원하던 교회도 아니었고, 그런 교회와 궁정으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한 작곡가들은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라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가 「독일 미사」를 쓰게 된 표면상의 동기도 그의 지인 요한 필립 노이만이 청탁해서였다.

 

노이만이 원했던 것은 관습적으로 미사곡 작곡에 사용되었던 미사 통상문의 다섯 부분, 곧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사도신경’(Credo), ‘거룩하시도다’(Sactus),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성가대만 부를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미사곡이 아닌 회중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단순한 성가를 원했다.

 

그리하여 노이만은 미사 통상문에서 여덟 부분을 선택하여 직접 독일어 가사를 만들어 달았다. 또한 이 미사곡집에는 기존과는 달리 부록으로 ‘주님의 기도’가 포함되었다. 그 결과 기존 미사곡의 전통에서는 멀어졌지만,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는 그의 장기였던 소박한 민요풍의 선율이 넘치는 교회 음악으로 남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이 음악을 통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 소년 성가대원으로서 노래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일만큼 소박한 미사곡의 선율들은 한 예술가가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죽음의 두려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게 해 준다.

 

‘미사 시작’의 우리말 가사가 전해 주는 것처럼 그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하소연을 들어주시고 서러운 눈물을 씻어 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라는 것을.

 

* 정이은 안드레아 -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5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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