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울주보 음악칼럼] 부활대축일에 일어난 비극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가톨릭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쁜 날은 부활 대축일입니다. 그렇건만 이날이라고 사람이 죄짓기를 멈추고 나쁜 마음 안 먹을까요? 속죄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순 시기에도, 또 주님 부활로 새 생명을 얻는 부활절에도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짓고 있으니 이 세상이 평화로울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인간 본성에서 오는 갖가지 욕망과 감정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렌지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아름다운 계절, 부활의 기쁨에 온 마을이 술렁일 때, 어긋난 사랑으로 한 청년이 죽음에 이르는 비극을 그린 오페라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가 작곡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입니다. 한 시간 남짓의 1막짜리 이 오페라는 그전까지의 오페라들과는 다른 점이 있어 오페라 사(史)에 한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베리스모 verismo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것인데요, 이전에는 오페라의 소재가 주로 성경이나 신화 속 인물, 왕족이나 귀족들의 삶과 사랑이었다면 이 오페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사실주의 오페라’로 특정 지어진 것입니다. 물론 그즈음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에 불어 닥친 자연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번역하면 ‘시골의 기사(도)’라는 뜻인데요, 방금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세련되지 못한 청년 투릿두(남 주인공)를 말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야기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의 작은 마을, 부활절 아침부터 시작됩니다. 전주곡에 이어 막이 오르면 교회 종소리가 울리고 부활 대축일을 맞은 교회 앞 광장은 부활의 기쁨에 들뜬 마을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성모님을 찬양하고 자연을 찬미하는 등 여유롭습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이 바로 유명한 ‘오렌지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입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을에서 포도주 주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루치아와 함께 사는 청년 투릿두는 군대에 가기 전 롤라라는 여인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롤라는 투릿두가 군대에 간 사이에 다른 남자 알피오와 결혼을 해버렸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투릿두는 롤라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것을 알고 홧김에 마을 처녀 산투차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롤라를 향한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고, 롤라 또한 거룩한 혼인성사의 약속을 저버리고 투릿두와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눕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산투차는 질투와 걱정으로 괴로운 나머지 부활절 날 투릿두의 어머니 루치아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투릿두가 롤라를 떠나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기도해달라고 간청하죠. 이날도 투릿두는 매달리는 산투차를 버려두고 롤라와 함께 나갑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차에 롤라의 남편 알피오가 루치아의 주점에 오자 산투차는 투릿두와 롤라의 불륜을 폭로하고 맙니다. 알피오는 복수를 다짐하고, 뒤늦게 자신의 폭로를 후회한 산투차가 이를 말리지만 이미 소용없습니다. 이제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교회를 나와 루치아의 주점에 들러 한잔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복수를 다짐한 알피오는 투릿두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투릿두도 이를 받아들이죠. 결투에 나가기 전 투릿두는 포도주를 마시며, 어머니 루치아에게 자신이 없을 때 산투차를 잘 돌봐달라는 말을 하고 잠깐 다녀오겠다며 떠납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죠. 그리고 얼마 후 사람들의 외침이 들립니다. 투릿두가 죽었다는…. 이 말에 산투차와 루치아는 그만 쓰러지고 맙니다. 이상이 부활절에 일어난 안타까운 비극의 전말입니다. 그게 사랑이든 분노와 미움, 질투의 감정이든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지 못해서 일어난 참극이죠. 예수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나누는 날에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세속적인 이야기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간주곡(Intermezzo)으로 유명합니다. 알피오가 복수를 다짐하고 난 후 관객의 긴장이 고조에 달할 때 잠시 분위기 전환과 숨을 돌리기 위한 간주곡이 나오는데, 그 멜로디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암시하는 듯하죠. 이 곡은 오래전 우리나라 어느 커피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 3>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성난 황소> 에도 쓰여 아주 친숙해진 음악입니다. 부활 즈음이면 꼭 한 번 떠올리게 되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음악을 들으며, 본성 앞에서 나약하고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이런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시고 빛으로 이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상기해봅니다. [2021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6-7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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