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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쾌한 클래식: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중 아리아 주님 평화를, 평화를 주소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13 조회수2,922 추천수0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5)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중 아리아 ‘주님 평화를, 평화를 주소서’


비극적 사랑이 만든 애절한 노래

 

 

‘주님 평화를, 평화를 주소서’(Pace, pace mio Dio)는 베르디의 오페라 여성 아리아 중 빛나는 명곡 중의 하나다. 이 곡은 이브 몽탕과 제라르 드 파르뒤외가 주연을 맡은 클로드 베리 감독의 1986년 작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Jean de Florette)에 나온다. 하모니카로 부는 주요 주제가 운명의 테마로 중요 장면마다 흐르며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콘서트홀에서도 이 운명의 테마가 들어있는 서곡과 아리아가 많이 불렸다.

 

오페라 ‘운명의 힘’은 세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던 베르디에게 러시아 황실이 특별히 의뢰한 작품이다. 상당히 두둑한 금액을 손에 쥐여주었고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극장에서 초연했지만,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운명의 힘 4막은 1750년경 스페인 코르도바의 오르나추엘로스 수도원 안마당이 배경이다. 멜리토네 수사가 가난한 농부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그가 더 달라는 등 귀찮게 하는 빈민에게 짜증을 내자 빈민들은 “이전의 라파엘 수사는 친절했다”며 그를 그리워한다. 과르디올라 수도원장이 멜리토네에게 “빈민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타이르자 멜라토네는 “라파엘은 피부도 검은 것이 인디오 같다”고 투덜댄다.

 

이때 이탈리아 전장에서 스페인의 산속까지 라파엘 수사를 찾아온 돈 카를로가 등장한다. 카를로는 “너를 찾아 5년 동안이나 헤맸다. 결투를 받아라!”라고 종용한다. 도대체 이 두 사람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라파엘 수사의 정체는 잉카 인디오의 피를 이어받은 돈 알바로였다. 그는 카를로의 여동생 레오노라와 결혼하고 싶어 했으나, 후작인 레오노라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야반도주하기로 했으나 후작에게 들키고 만다. 권총을 꺼내 들었던 돈 알바로의 오발 사고로 후작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에 후작의 아들 돈 카를로는 복수를 다짐하며 돈 알바로를 죽이려 그의 행적을 뒤쫓는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이탈리아 전선에서 장교로 만난다. 알바로가 카를로를 도박판 위기에서 구해주며 우정도 쌓게 된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된 후 돈 알바로가 치명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자 유언으로 “내 상자를 태워달라”고 카를로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뭔가 모를 운명의 힘을 느낀 돈 카를로는 상자를 열고 그 안에서 여동생 레오노라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알바로가 살아난다면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한다. 기적적으로 알바로가 살아나서 결투를 시작하지만 다른 병사들이 두 사람을 떼어놓았고 알바로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하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오르나추엘로스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5년 동안 복수를 위해 알바로를 찾아다닌 카를로. 집요하게 인종 문제를 거론하며 라파엘 수사가 된 알바로의 화를 돋운다. 알바로가 계속해서 “형제여 나는 당신과 싸울 수 없어요”라며 화해를 하자고 제의하지만 카를로가 뺨을 때리자 참지 못하고 결투를 위해 수도원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레오노라가 잠시 빵을 가지러 가기 위해 수도원 동굴에서 나오며 지금도 알바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린다.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수녀가 됐고, 오빠 카를로를 피해 수도원의 동굴에서 오랜 세월을 홀로 지냈다.

 

“주님 평화를, 평화를 주소서! 잔혹한 불행이 날 덮치고 이 몸 지치도록 슬픕니다. 저의 고통은 깊습니다. 전 그이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저의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운명이여! 한 죄악이 우리를 이승에서 갈라놓았습니다. 난 알바로 그대를 결코 다시 만나지 않으리. 오 하느님이여, 하느님이시여, 저를 죽게 하소서.”

 

오빠 카를로와 사랑하는 알바로 사이의 악연을 끊기 위해서는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기도를 처절하게 올리는 레오노라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프라노의 명 아리아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6월 13일, 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서울 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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