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칼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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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크리스티나 | 작성일2021-12-16 | 조회수2,559 | 추천수1 | ||||
월간 <빛> 12월 교회음악 칼럼 https://www.lightzine.co.kr/last.html?p=v&num=442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 오스트리아 오베른도르프(Oberndorf) 마을 <고요한 밤 경당(Stille Nacht Kapelle)>
1818년 성탄 전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교 작은 마을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두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합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 홀로 양친은 깨어 있고”
기타 반주를 하며 테너 선율을 부르는 사람은 니콜라우스 성당의 요셉 모어 신부님이고, 아래 선율을 부르며 화음을 맞추는 사람은 이웃 마을 안스도르프의 학교 선생님이자, 니콜 라우스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인 프란츠 그루버입니다.
청아하고 온화한 두 사람의 목소리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 노래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시작은 1818년 성탄절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요셉 모어 신부님은 니콜라우스 성당의 보좌 신부로 부임하기 1년 전인 1816년 오스트리아 마리아파르(Mariapfarr)의 성당 제단화를 보고 시를 한 편 남겼습니다.
▲ 작자미상, ca.1500, <동방박사의 경배>, 오스트리아 마리아파르(Mariapfarr)
이후 1818년 성탄절을 앞두고, 이 시를 재직 중이던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인 프란츠 그루버에게 건네며 기타 반주와 남성 2중창을 위한 곡으로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곡이 만들어지고 처음 불린 성 니콜라우스 성당은 1899년 홍수 피해를 입으며 철거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조금 늦춰 치른 성가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옛 니콜라우스 성당 자리에 기념 경당을 짓기로 합니다. 1937년 경당이 완공되었고, ‘고요한 밤 경당’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니콜라우스 성인은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성인이고, 성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귀한 노래가 되었으니, 성 니콜라우스 성당의 모든 것이 ‘성탄절’과 참으로 인연이 깊습니다.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 노래는 입에서 입을 거쳐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여러 나라에 닿았습니다. 전 세계 14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노래되고 있으며,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든 아기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편안하고 안온한 멜로디는 잠시나마 참혹한 전쟁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서부전선의 격전지였던 벨기에의 이프르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포성이 울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도 성탄절이 다가왔고, 몇몇 독일 병사는 참호 주변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영국군은 또 다른 캐럴로 화답했고 이내 양측 병사들은 무인지대로 나와 음식, 술, 담배, 단추 등 작은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새해를 맞을 때까지 서로 공격 하지 않기로 정전 약속을 합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 은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듯 전쟁을 멈추게 한 것 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고요한 밤 울려 퍼지는 온화한 노래 한자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조명과 장식으로 요란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곳이 아니라 고요하고 적막한 마구간에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군림하고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고 헌신하는 사랑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2021년 12월, 장 낮고 가장 비천한 자리에 찾아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분주하고 부산한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고요하고 거룩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성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원본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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