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쾌한 클래식: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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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1-17 | 조회수1,707 | 추천수0 | |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33)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상) 바알 예언자 450명과 대적해 이긴 엘리야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는 1844년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35세에 완성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당시 멘델스존은 음악계의 슈퍼맨이었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을 빼어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면서도 1830년부터 15년간 틈틈이 작곡을 이어간 작곡가였다. ‘무언가’(Songs without words)라는 가사 없는 노래 49곡을 피아노용으로 작곡했는데 이 곡들은 시상이 풍부하고 낭만적이며 밝고 낙천적인 곡으로 콘서트뿐만 아니라 가정용 악보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는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4번 이탈리아 등 교향곡과 실내악 작곡가이자 지휘자로도 매우 유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베를린 징아카데미(Singakademie)를 지휘하면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 등 잊히고 있던 바로크 시대 다양한 바흐 곡을 1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발굴해 지휘했다. 오늘날 바흐를 추앙받게 하고 바흐 곡을 자주 연주하게 만든 주역이다.
세상은 인기 작곡가이자 빼어난 지휘자인 멘델스존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일 중독자였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음악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그의 인기를 절정으로 밀어 올렸다. 그런데 멘델스존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고 난 후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몸이 쇠약해져 투병 생활을 한다. 이때 그는 죽음을 예감한다. 그는 연극 ‘엘리야’에 강렬하게 매료되었는데, 열왕기 상권 17―19장에 등장하는 예언자 ‘엘리야’를 소재로 곡을 썼다. 1844년부터 1846년까지 3년 동안 2부 43곡으로 완성한 아름다우면서 박진감 넘치는 필생의 역작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작품번호 70은 버밍엄 트리엔날레 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1846년 8월 26일 버밍엄 타운홀에서 초연되었다. 영국 버밍엄에서 의뢰했기 때문에 ‘엘리야’는 가사가 영어로 돼 있다. 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왕 아합은 이웃 국가인 아시리아의 강한 국력에 대항하기 위해 페니키아 여왕인 이제벨과 동맹을 맺고 정략 결혼한다. 그 결과 주님을 따르던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받아들이게 되고 아합 왕은 주님을 무시하고 바알 신전을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을 숭배할 것을 강요했다.
대대로 계명을 지켜 온 집안에서 태어나 주님의 복음을 전하던 엘리야는 매우 괴로웠지만 당시에 단 한 명 남은 마지막 이스라엘 예언자로서 사명을 다한다. 작품은 엘리야(바리톤)의 서창으로 시작된다.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열왕기 상권 17장 1절의 말씀이다.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엘리야는 행한다. 요르단강 크릿 시냇가에서 숨어 지내며 냇물을 마시고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는다. 자신을 살려준 가난한 사렙타 과부의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서 배고프지 않게 해주었으며 과부의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을 행한다.
3년 후 바알 예언자들과 대적하게 된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않고 450명의 바알 예언자들을 홀로 상대한다. 황소를 제물로 준비해 두고 누가 하느님께 응답으로 불을 받게 되는지 대결하는데 바알 예언자는 450명이 기도하지만 그들의 신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엘리야의 기도로 주님의 불길을 받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고 부르짖었다. 엘리야가 주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하자 비가 내려 메마른 땅을 드디어 적시게 되는 것으로 오라토리오 ‘엘리야’ 1부는 끝난다.
※ QR코드를 스캔하시면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월 16일, 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34)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하) 불처럼 일어난 엘리야 보며 주님 찬양
오라토리오(Oratorio)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기도소(Oratorium)에서 나온 음악 용어다. 세속적인 오페라와는 달리 성경을 소재로 하는 종교 음악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페라처럼 화려한 무대나 의상을 요구하지 않고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있다. 오페라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공연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빚에 쫓기던 헨델은 오페라 대신 오라토리오로 장르를 전환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들어보면 바흐의 수난곡과 헨델의 오라토리오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낭만주의자이지만 바흐를 부활시킨 신고전주의자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의 음악에 대한 왕성하고 폭넓은 소화력을 체험케 한다.
1838년부터 오라토리오 엘리야의 초안 작성과 토론을 계속 해오던 멘델스존은 드디어 1845년 영국 버밍엄 페스티벌에서 오라토리오 작품을 부탁받자 작곡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멘델스존은 열정적으로 이 작품에 매달렸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독일어 대본을 영어로 번역한 바톨로뮤와 서신을 끝없이 주고받으며 중요한 영어 단어의 강세에 따라 반주부를 다시 수정하고 최상의 음악적 표현을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다.
멘델스존은 1846년 8월 26일 영국 버밍엄 페스티벌에서 2000명의 청중 앞에서 자신의 지휘로 감동적인 역사적인 초연을 했는데 무려 네 곡의 합창곡과 네 곡의 독창곡이 앙코르 요청을 받았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당시에는 곡 중간에도 앙코르를 받았다.) 이 공연으로 멘델스존은 영국에서 바로크 시대에 헨델이 누리던 인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으며 작곡가로서 최정점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작곡으로 쌓인 피로에 건강을 크게 해친 멘델스존은 사랑하는 누나 파니 멘델스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1년 후인 1847년 11월 4일 38세에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 엘리야의 성공 이후 멘델스존은 자신의 세 번째 오라토리오 ‘그리스도’를 완성하지 못한 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탄 사도 바울, 2탄 엘리야, 3탄 그리스도 이렇게 3개의 작품으로 자신의 신앙고백을 완성하려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엘리야는 구약성경에서뿐만 아니라 멘델스존의 작품을 통해 음악사에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1846년 초연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930년까지 매년 공연이 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오라토리오가 되었으며 헨델이 18세기에 작곡한 ‘메시아’와 비교해 ‘19세기의 메시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2부는 이스라엘왕 아합과 이제벨 여왕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는 아리아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한다. 아합왕은 이제벨에게 카르멜 산에서 3년 만에 큰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의 기적과 바알 예언자들을 칼로 모두 죽인 일을 들려주자 이제벨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엘리야를 죽이려 한다. 엘리야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광야로 도망치며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를 부른다. 그러자 천사들이 격려하며 엘리야를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한다. 거기에서 주님을 만난 엘리야는 불 말이 이끄는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합창 ‘그때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났다’가 극적으로 울리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오라토리오 엘리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QR코드를 스캔하시면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35Io8O7uAk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월 23일, 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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