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한겨울에 꾸는 꿈, 슈베르트(Schubert)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중 ‘봄 꿈(Fruhlingstraum)’ 이제 끝자락에 이르렀지만 1월은 겨울의 한가운데, 가장 추울 때입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칼바람이 우리 마음조차 얼어붙게 만들죠. 클래식 음악방송에서 겨울이면 빠지지 않고 선곡되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입니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집인 <겨울 나그네>는 매해 겨울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주 듣게 되지만 진행자마다 다양한 해설로 개성이 다른 여러 성악가의 노래를 고루 들려주어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바로 이 곡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겠지요. 겨울이면 이 음악을 듣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느껴집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문이 닫히면서 낭만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음악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는 서른한 해 짧은 생을 살면서 상당수의 명곡을 남겼는데,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가곡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 어떤 시라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매혹적인 선율의 날개를 달고 나와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죠. 그중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1794~1827, 독일)의 연작시에 붙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입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부르던 ‘보리수’도 바로 <겨울 나그네> 중의 한 곡이죠. 이 작품을 작곡하던 1827년, 극도의 가난과 병고로 죽음을 옆에 끼고 살던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에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삶에 대한 절망과 고통을 공감했고, 이 감정은 음울하고도 황량한 겨울 풍경, 그리고 세상과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한 나그네의 응어리진 마음과 방랑, 쓸쓸함이 되어 이 작품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의 곡들 가운데,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가뿐하고 친근한 멜로디로 귀를 기울이게 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열한 번째 곡 ‘봄 꿈(Frühlingstraum)’입니다. 방랑하는 젊은이는 까마귀가 우짖는 황량한 겨울에 봄 꿈을 꿉니다. 화사한 꽃과 푸른 초원을 꿈꾸고, 아름다운 처녀와의 사랑을 꿈꿉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이것이 다 꿈이었음을 알고 한없이 낙담하게 되죠. 그럼에도 이 꿈을 접을 수 없습니다. ‘창가의 잎이 푸르게 변하면 내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음악은 달콤하고 희망에 찬 꿈을 꾸듯 가볍고 다정하게 시작하다가 곧 황량한 겨울 모습으로 바뀌고, 이어 현실을 깨닫고 낙심하는 젊은이를 그립니다. 다시 또 꿈을 꾸면서 분위기가 전환되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죠.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한겨울에 꾸는 봄 꿈은 비록 찰나일지라도 ‘희망’ 그 자체입니다. 코로나 암울한 시기에 우리는 꿈을 꿉니다. 모두 마스크를 벗고 한데 어울려 손을 맞잡거나 얼싸안는 꿈입니다. 세상이 다시 거리두기 없이 친밀하고 활기차게 돌아갑니다. 마치 뮐러와 슈베르트가 한겨울에 꾼 ‘봄 꿈’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 나그네’처럼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꿈이 곧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주님, 저희의 꿈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아멘. [2022년 1월 30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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