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행복한 작곡가 멘델스존이 말없이 건네는 노래 - ‘무언가(無言歌)’ 입춘과 우수가 지났으니 어느새 봄의 문턱입니다. 한때 핸드폰 통화연결음(컬러링)으로 많이 쓰이던 음악 중에 ‘봄 노래’라는 곡이 있습니다. 통화를 기다리는 동안 화사하고 밝은 피아노 소리가 나오면 저절로 선율을 따라서 흥얼거리곤 했죠. 이 곡은 낭만주의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독일)이 작곡한 <무언가(無言歌, Lieder ohne Worte)> 중에서 ‘봄 노래(Frühlingslied)’라는 곡입니다. ‘무언가-말(가사) 없는 노래’라니, 언뜻 ‘재미있는 제목이다’ 싶습니다. 이 곡은 가수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노래입니다. 1829년 멘델스존이 스무 살에 처음 쓰기 시작해서 1845년 서른여섯,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까지 꾸준히 작곡했던 피아노 소품들이 6곡씩 총 8권의 <무언가>집에 담겨있습니다. 모두 48곡이죠. 거기에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별도의 <무언가>가 한 곡 더 있습니다. 19세기 들어 유럽의 중산층 가정에는 피아노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이 추세에 맞춰 작곡가들은 짧고 서정적인 피아노 소품을 많이 작곡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런 자유로운 형식, 다양한 형태의 피아노 소품들은 낭만주의 음악의 한 특징을 이루었습니다. 멘델스존이 만든 <무언가>도 바로 이런 특징을 선도하는데 한몫을 했죠. <무언가>의 음악들은 대부분 길이가 짧고, 밝고 서정적이며 사랑스럽습니다. 멘델스존은 ‘행복한 자’라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 ‘펠릭스(Felix)’ 만큼이나 복 많은 생을 살다간 작곡가입니다. 본인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든든한 재력과 교양을 갖춘 집안 환경은 그의 재능을 한껏 꽃피게 해주었습니다.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할아버지,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 교양이 넘치는 어머니에게서 수학, 프랑스어, 문학, 미술,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고, 매주 집에서 음악회를 열어 당대 유명 인사들을 초대할 정도로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소년 시절 멘델스존은 음악은 물론이고, 문학, 기하학, 역사, 지리, 승마, 무용, 미술, 체스 등 못 하는 게 없었다고 하죠. 이런 성장 배경은 그의 음악에도 영향을 주어 멘델스존의 곡들은 대체로 밝고 따뜻해서 행복감을 줍니다. 또한 보수적인 스승에게서 착실히 배운 학생답게 그는 낭만주의 시대에 살면서도 고전주의 선배 음악가들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를 기초로 자신의 작품을 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음악가였습니다. 이런 성향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연주함으로써 그 곡에 새 생명을 부여했고, 헨델의 작품들을 무대에서 부활시켰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최상의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갖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느라 일생을 작곡가, 독주자, 지휘자, 음악원 원장으로 바쁘게 살다간 부지런하고 성실한 음악가 멘델스존. 그를 생각하면, 주인이 맡긴 다섯 탈렌트를 잘 활용해 열 탈렌트로 만든 종의 이야기(마태 25,14-30)가 떠오릅니다. 멘델스존은 우리에게 음악으로, 말 없는 노래로 얘기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서, 주님을 만나는 날 열 탈렌트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요. [2022년 2월 27일 연중 제8주일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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