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쾌한 클래식: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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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3-09 | 조회수1,665 | 추천수0 | |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39)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 괭이로 일어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최근 푸틴의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인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전 세계인들이 걱정하고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제국 시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황실에 의해서 소러시아(Little Russia)로 불렸다. 척박한 러시아 땅에 비해 체르노좀이라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는 러시아를 위한 곡창지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차이콥스키가 1872년에 쓴 교향곡 2번의 제목이 ‘소러시아’인데 바로 우크라이나를 뜻한다. 농촌이 많은 우크라이나는 민요의 훌륭한 보고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2번의 4악장에서 우크라이나 민요풍의 곡으로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즐거움을 마음껏 표현했다. ‘소러시아’는 러시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우크라이나의 이미지였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는 소설 「죽은 혼」의 저자 니콜라이 고골리가 있다. 음악가로는 1891년 우크라이나 손초프카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있다. 그는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서 일어난 1812년 전쟁을 배경으로 다룬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를 1946년 3시간 50분짜리 오페라로 만들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했다. 프로코피예프는 1941년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공한 이후 1942년 러시아인들이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러시아의 역사를 돌아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쓴 작품이다. 1부는 전쟁 발발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사회 속에서 나타샤 로스토바, 안드레이 볼콘스키, 피에르 베주호프를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는 쿠투조프 장군이 이끈 나폴레옹과의 보로지노 전투, 모스크바 대화재로 이어진다. 그리고 1812년 11월 프랑스군은 추위 속에 패퇴하고 안드레이 공작은 세상을 떠났지만 피에르와 나타샤는 살아남았고 쿠투조프 장군과 러시아군은 승리를 축하하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프로코피예프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후 소련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고국이 그리워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처음엔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작품 경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꼬집은 통치자 스탈린과 즈다노프 서기장에 의해 고통받던 작곡가였다. 운명의 장난이랄까. 그가 세상을 떠난 1953년 3월 5일 모스크바에서는 또 한 명의 인물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프로코피예프를 무척 괴롭혔고 소련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던 요시프 스탈린이다.
“사랑은 죽음을 방해한다. 사랑은 생명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받고 있기에 이해되는 것이다.”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 칼로써 얻은 국토는 다시 칼에 의해서 탈취당할 것이지만 괭이로써 얻은 것은 영원한 것이다. 평화는 폭력에 의해서 유지될 수가 없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위대한 통찰의 글을 남겼다. 우크라이나는 괭이로 일어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다. 푸틴 대통령이 톨스토이의 이 글을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 중 나타샤의 왈츠를 들어보자.
※ QR코드를 스캔하면 프로코피예프의 ‘전쟁과 평화’ 중 나타샤의 왈츠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8hecZjtTtw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3월 6일, 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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