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불필요한 모든 것을 덜어내는 음악, 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거울을 한 번쯤은 보셨겠지요? ‘거울’은 순전히 자기 모습을 보기 위한 사물입니다. 그래서 거울이 상징하는 것은 자신을 비추어보고 돌아보는 ‘자기 성찰’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시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표현으로 거울이 자아 성찰의 도구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시인은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오욕의 역사를 살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훗날 자신의 슬픈 모습도 거울을 통해 그려보죠. 윤동주의 시에서 만나는 거울만큼이나 우리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음악에도 있습니다. 올해 87세인 현대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년~ , 에스토니아)의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이라는 곡입니다. 이 곡은 아르보 패르트가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 피바코프(Vladimir Spivakov, 러시아)의 의뢰를 받아 1978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했습니다. 원곡은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지만 이후 바이올린뿐 아니라 첼로나 비올라로도 많이 연주됩니다. 현대음악임에도 귀에 순하게 와 닿는 서정성, 단순하지만 독특한 음악적 흐름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각종 영화, TV, 무용, 연극에서 배경이나 효과음악으로 수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음악은, 리듬이랄 것도 없이 마치 기계처럼 단순하게 세 음씩 연주되는 피아노 반주에 느릿느릿 끄는 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이올린 멜로디가 곡의 거의 전부입니다. 때때로 피아노가 세 음에서 벗어나 왼손으로 낮은음이나 높은음을 한 번씩 쳐주는 정도죠. 이 곡에 대한 음악적 해설은 ‘미니멀리즘’(Minimalism, 제한적이거나 최소한의 음악적 소재를 사용하는 음악으로, 반복적인 패턴이나 리듬 등이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라든지 아르보 패르트 특유의 작곡 기법인 ‘틴틴나불리’(Tintinnabuli, ‘종’을 뜻하는 라틴어로, 아르보 패르트가 서양의 중세와 르네상스 성가에서 받은 영향에서 창안.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삼화음을 구성하는 세 개의 음이 마치 종소리(종의 울림) 같다고 표현하며 붙인 명칭)같은 전문 용어로 설명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감정으로 느끼는 이 음악에 대한 설명은 단순함 속에 담긴 순수함과 명료함, 영성적으로 다가오는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단순한 이 음악은 우리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 순정한 마음으로 음악 자체를 들여다보게 하고, 결국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나란히 마주한 거울에 맺힌 상이 서로 반사되면서 거울 속 거울에 끝없이 형성되는 것처럼, 다가오다 멀어짐을 반복하듯 연주되는 선율과 리듬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음악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영혼이 가벼워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명상을 넘어 영적인 시간을 만나고 난 느낌입니다. 묵상과 참회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음악이 있을까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자주 가지게 되는 사순시기에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 거울>은 우리 신앙생활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2022년 3월 13일 사순 제2주일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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