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47) 베르디의 오페라 ‘제1차 십자군 롬바르디아인’
전장으로 떠나는 아버지와 평화 위한 기도 1839년 ‘산 보니파치오의 공작 오베르토’, 1840년 ‘하루만의 임금님’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인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연타석으로 대실패를 한 신예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그로부터 2년 후인 1842년 ‘나부코’를 통해 역전 만루홈런 같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내와 두 아이를 모두 잃고 거둔 작곡가로서의 첫 성공이라 그에게는 더욱 뜻깊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의 실패에도 베르디를 굳게 믿고 있던 라 스칼라 극장장 메렐리는 역시 “나의 선택은 옳았다”며 베르디에게 바로 다음 작품을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1년 만에 탄생한 작품은 ‘나부코’와 같은 대본 작가인 테미스토클레 솔레라의 애국적이고 종교적인 소재의 1843년 작 ‘제1차 십자군 롬바르디아인’이다. 롬바르디아는 이탈리아의 곡창지대이자 평야 지대로 이탈리아 쌀 요리 리소토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이 롬바르디아의 주도가 스칼라 극장이 있는 밀라노다. 스칼라 극장을 상징하는 문양은 흰색 바탕의 붉은 십자가다. 11세기 이탈리아에서 출발했던 제1차 십자군 표식이며 그것을 그대로 스칼라 극장의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잉글랜드 깃발과도 같은 문양이다. 그렇기에 십자군 1차 원정 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롬바르디아인’이라는 이름으로 상연된다는 것은 밀라노 사람들에게는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김제평야를 배경으로 한 ‘호남인’이라는 오페라가 초연된다는 뉴스와 같은 것이다. 전작 오페라 ‘나부코’가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인들에게 전쟁으로 빼앗겼던 예루살렘성을 되찾는 이야기라면 ‘롬바르디아인’은 롬바르디아 공국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있는 안티오키아로부터 탈환하겠다고 떠나는 이야기다. 제1차 십자군 원정을 다뤘던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이어 132년 만에 같은 배경으로 ‘롬바르디아인’이 등장한 것이다. 1막 1장은 밀라노 성 암브로시오 성당 앞 광장이다. 형 아르비노와 싸워 그를 죽이려 했던 죄로 추방됐던 파가노가 죄를 용서받아 밀라노로 돌아왔다. 파가노는 성당에서 형에게 용서를 빌고 아르비노는 용서의 입맞춤을 한다. 시민들은 형제의 화해를 축하한다. 사제가 나타나서 아르비노에게 롬바르디아 십자군의 사령관이 되어달라고 하자 두 형제는 함께 맞서 싸우자고 서약한다. 그리고 십자군 출정을 찬양하는 합창이 이어진다. 하지만 파가노의 속내는 형을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수녀들의 합창도 멀리서 들려온다. 2장은 폴코 궁전이다. 아르비노의 아내 비클린다와 딸 지젤다가 파가노의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에 불안해한다. 아르비노는 이들을 위로하는데 아름다운 딸 지젤다가 잠들기 전에 ‘성모 마리아여’를 부른다. 두렵지만 성모님께 평화를 간구하는 절실한 지젤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전설의 음성으로 이 곡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보자. 이 작품은 밀라노 초연 4년 후인 1847년 파리 오페라에서 베르디 오페라 사상 최초의 그랜드 오페라로 개작되어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 QR코드를 스캔하시면 베르디의 ‘제1차 십자군 롬바르디아인’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naver.me/GgO7nTgt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5월 1일, 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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