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귀로 듣는 시칠리아의 전원 풍경 시칠리아나(siciliana) 태양이 이글거리거나 세찬 장대비가 내리는 한 여름, 잠시 바다 깊숙이 해저면까지 내려가면 느낄법한 암흑의 고요한 세계를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영화 <그랑 블루>의 주인공처럼요. 잠수 경쟁을 하게 된 두 프리 다이버의 우정과 질투, 사랑보다 바다를 택하는 주인공의 깊은 눈이 기억에 남는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 최대의 섬입니다. 작곡가 벨리니가 시칠리아 출신이고 베르디는 이곳을 배경으로 오페라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를, 마스카니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작곡했습니다. 또, 영화 <대부>,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섬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음악적 스타일, 장르가 되어 곡명으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시칠리아나(노)(siciliana/siciliano), 프랑스어로는 시실리엔느(sicilienne)라고 부르는 곡입니다. 시칠리아의 민속 춤곡이 원형인 이 음악은 17,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여러 작품에서 발견됩니다. 소나타의 한 악장으로 쓰이거나 오페라, 칸타타 등의 아리아에서 찾아볼 수 있죠. 음악적 특징은 약간 느린 빠르기로 8분의 6박자나 8분의 12박자로 연주되며, 음표에 부점(附點)을 붙여 리듬감을 살린다는 점입니다. 곡의 느낌은 애잔하지만 평화롭고 서정적입니다. 목가(牧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이 시칠리아나의 가장 잘 알려진 곡으로 세 작품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독일)의 플루트 소나타 내림 마(E flat)장조, 바흐작품번호(BWV.) 1031번의 2악장 시칠리아노입니다. 청아한 음색의 플루트가 친근하고 다정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두 번째로는 18세기 후반 빈(Wien)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파라디스(Maria Theresia von Paradis 1759~1824, 오스트리아)가 작곡한 시실리엔느입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연주되는 이 곡은,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의 연주 활동은 물론 피아노곡과 오페라, 칸타타 작곡, 교육에도 열성을 쏟았던 파라디스의 오늘날까지 연주되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시실리엔느는 바로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 프랑스)의 작품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상징주의 작가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 벨기에)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 연극 공연에 연주될 음악으로 작곡된 곡이죠. 세 작품을 연이어 들으면 시칠리아나 음악이 어떤 분위기의 음악인지 확실히 알게 됩니다. 여름은 폭염, 폭우, 바캉스 등으로 불안하고 소란스러우며 들뜨기 쉬운 계절이지만, 우리는 시칠리아나를 들으며 뜻밖에 평화롭고 차분한 여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2022년 7월 24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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