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작곡가의 진심을 전해준 음악, 비에니아프스키 ‘전설(Legende)’ 좋아하는 악기가 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한때는 부드러우면서도 밝고 명랑한 클라리넷을 좋아했지만, 악기별 아름다움이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들을 두루 듣다 보면 한 악기만을 좋아할 수 없게 됩니다. 각 악기가 가진 개성에 감탄하게 되는데, 이런 특색을 잘 표현하는 작곡가는 대개 그 악기의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피아노의 경우,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가 대표적이고, 바이올린의 경우에는 파가니니가 대표적이죠.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신기(神技)와 관련해 여러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당대 최고의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파가니니처럼 명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작곡을 한 사람으로는 사라사테, 비외탕, 비에니아프스키, 크라이슬러 등이 있습니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바이올린의 명곡을 쓴 작곡가들입니다. 그중 폴란드 태생의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 1835-1880)는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인 바이올린 신동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열 살이 안 된 어린 비에니아프스키를 파리음악원에 입학시키죠. 그는 파리음악원에서 이미 자신만의 연주 기술을 확립할 정도로 실력이 빼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조국 폴란드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 아담 미키에비치(시인)와 프레데리크 쇼팽(음악가)을 만났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바이올린의 쇼팽’이라고 불렸듯이 비에니아프스키도 쇼팽처럼 조국의 민속 춤곡인 마주르카, 폴로네즈 등을 작곡했습니다. 둘 다 조국을 일찍 떠나 외국을 떠돌다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으로 자신이 폴란드인임을 분명하게 밝혔던 것이죠. 비에니아프스키는 파리음악원 졸업 후, 폴란드를 비롯, 유럽 각지로 연주 여행을 다니다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2년, 미국에서 2년간 교사와 연주가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바쁜 연주 일정은 1875년 앙리 비외탕의 후임으로 브뤼셀 음악원의 교수가 된 후에도 계속됐는데, 오랜 기간 연주 여행으로 누적된 피로가 건강을 악화시켰고, 결국 비에니아프스키는 1880년 3월 마흔다섯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의 작품 가운데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곡은 <전설 Legende op.17>이라는 제목의 소품(小品)입니다. 7분가량의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이 작품은 젊은 시절 비에니아프스키가 사랑하는 여인 이사벨 햄프턴(Isabel Hampton)과 결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곡입니다. 약혼을 인정하지 않던 이사벨 부모님께 이 곡을 들려드리자, 이사벨의 부모님은 마음을 바꿔 둘의 결혼을 승낙했으니까요. 그만큼 비에니아프스키의 진심, 간절함이 담긴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정(否定)의 마음을 긍정으로 바꾼 곡이라니, 여느 곡보다 더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들어보게 됩니다. 못마땅한 일로 마음이 불편할 때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듯 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스르르 풀릴 것만 같습니다. [2022년 8월 28일(다해) 연중 제22주일 서울주보 4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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