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가을과 클라리넷, 브람스 <클라리넷 오중주곡> 2006년 일본의 유명 온천지 구사쓰(草津)에서 열린 ‘국제 음악 아카데미 & 페스티벌’을 취재했습니다. 그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 연주자면서 독주자로 활동하는 카를 라이스터(Karl Leister, 독일)를 인터뷰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클라리넷 작품 세 개를 꼽아달라고 했죠. 그는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브람스의 오중주곡, 레거(Max Reger, 1873~1916, 독일)의 오중주곡을 꼽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세 작품 모두 작곡가가 그 곡을 쓴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으니, 모차르트, 브람스, 레거는 세상의 마지막을 클라리넷과 함께 한 거라면서, 클라리넷을 ‘죽음의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만년에 아름다운 클라리넷 작품을 쓴 이유를 이 악기가 ‘가을의 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클라리넷은 아주 많은 색채를 가진 악기인데, 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소리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은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죠. 낙엽이 떨어질 때의 느낌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듣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라이스터 연주자 개인의 의견이겠지만 저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작곡가의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연주한 대가(大家)의 말씀이기도 하고, 특히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곡에서는 인생의 황혼, 가을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전통에 기반한 작풍을 유지했던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독일)는 자신과 맺어진 인연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새어머니와 그녀의 아들을 끝까지 보살폈고, 자신을 처음 음악계에 소개해 준 선배 작곡가 슈만이 정신 질환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슈만 집안을 끝까지 돌봅니다. 특히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의 관계는 애정이냐, 존경이냐를 두고 숱한 논란이 있을 정도로 남다른 것이었지요. 브람스는 쉰일곱 살이던 1890년 현악 오중주곡 작품번호(op.) 111을 작곡했는데, 이 곡을 매우 힘들게 완성한 모양입니다. 기진하여 당분간 작곡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지요. 하지만 이듬해 3월, 마이닝엔에서 리하르트 뮐펠트(R. Mühlfeld, 1856~1907)라는 뛰어난 클라리네티스트의 연주를 듣고는 창작력을 회복합니다. 이전에 비해 음역이 넓어지고 음색이 다채로워진 클라리넷의 새로운 음색에 매료된 거죠. 그리고 이 개량된 클라리넷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곡을 네 곡이나 집중적으로 씁니다. 클라리넷 삼중주곡과 오중주곡을 1891년에, 두 곡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1894년에 작곡합니다. 클라리넷 오중주곡은 클라리넷과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편성으로, 네 악장으로 구성됐으며 연주 시간 약 35분가량의 묵직한 곡입니다.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보살폈지만 정작 본인은 고독하고 때때로 비탄에 잠기고 체념에 빠졌을 브람스의 인간적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죠. 중후하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하며 애틋한 브람스의 음악이 이 가을 우리에게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확신합니다. [2022년 10월 23일(다해)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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