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여행12: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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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07-30 | 조회수140 | 추천수0 | |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12)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한 사람의 멋진 노래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여러 명이 노래 부를 때 보여지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OSV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숱하게 많지만, 그중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만드신 기적은 특별하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고 하니 공동체를 통해 기적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기적을 갈구하며 주님의 은혜와 손길을 기다린다. 항상 ‘나’를 구원해 주시길 바라며 ‘나’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기를 원한다. 사람의 원초적인 행동을 살펴 보면, 모든 발현 원리는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으셨고, ‘나’만의 구원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는데 ‘나’만 구원을 얻어 영생을 누린다고 생각해 보자. 이 얼마나 끔찍한 처벌인가.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주님이 주신 축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지 계속 시험하고 계신다. 항상 교인으로서 모범을 다하고 전도에 힘쓰라는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공동체가 얼마나 지키기 힘든가를 역설한다.
음악에서도 공동체적인 삶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합창단이다. 한 사람의 멋진 노래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여러 명이 노래 부를 때 보여지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각 성부의 보이스가 정확히 맞아 떨어질 때 공명되는 소리는 천상의 행복감을 준다.
좀 더 복잡한 음악 공동체는 오케스트라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오랫동안 연마한 연주기술을 함께 발현하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다. 똑같은 음을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며 감동과 전율을 준다. 미약한 씨앗이 공동체를 통해 몇 개의 광주리로 되돌아온다. 단순한 연주가 사실은 얼마나 축복인지, 그리고 함께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느끼고 감사해야 한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의 작품은 영적이고 시적이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형제들(Fratres)은 공동체에 대한 작곡가의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관객 없이 연주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https://youtu.be/TzqisNnFwMQ?si=SKXTgD7ItgwpEW3X
재미있는 것이, 우리가 합창 사운드, 현악 사운드라고 부르는 특징적인 소리들은 악기별·개인별 소리가 조금씩 다름으로써 얻어진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똑같은 소리를 가진 개인들이 정확히 같은 연주를 한다면 소리의 음량 차이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개인들이 차이를 가짐으로써 우리가 합창과 오케스트라 음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공동체는 개성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공동체가 그것이고 받아들여야 할 공동체의 본질이 이러하다. 우리가 만드는 공동체는 주님이 원하는 기적이 아닐까.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7월 28일, 류재준 그레고리오(작곡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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