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여행38: 전례와 색, 색과 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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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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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2-26 | 조회수45 | 추천수0 | |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38) 전례와 색, 색과 음악
가톨릭 전례는 은근히 까다롭고 복잡하며 대림·성탄·사순·파스카 성삼일·부활·연중으로 시기가 나뉘어 있고, 각각의 시기에 지내는 미사 전례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전례에 따라 사제의 제의 색깔이 변한다는 점이다.
초대 교회 때는 흰색 한 가지만을 착용하다가 인노첸시오 3세(1198~1216) 교황부터 축일의 특별한 의미를 색깔로 구분하는 것이 공식화되었다. 흰색은 그리스도가 친히 입은 색으로 영광과 결백·기쁨을 상징하며 부활 시기와 성탄 시기, 그리스도의 축일(수난과 관련있는 축일은 제외), 모든 성인의 날(11월1일), 성모 마리아 축일 등에 착용한다. 홍색은 뜨거운 사랑과 피를, 녹색은 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자색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속죄를, 흑색은 슬픔과 죽음을 상징하며, 장미색은 자색의 슬픔과 흰색의 기쁨에 대한 중간색으로, 각각 정해진 전례 시기에 입는다.
음악에서 시각적인 색깔은 상식적으로 의미 없게 들리지만, 놀랍게도 꽤 많은 작곡가가 음악 작품과 색깔을 연계해 사용한다. 이중 특별히 눈에 띄는 작곡가가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이다. 그는 음악을 통해 다양한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특히 색에 관련한 연상이 가장 강렬하다고 했다. C음(이해하기 쉽게 다장조 기준 도)은 빨간색, D음(레)은 주황색, E음(미)은 노란색, F음(파)은 녹색, A음(라)은 남색 그리고 B음(시)은 보라색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또 특정한 화음과 진행을 통해 특정한 색 조합과 연관시켰다. ‘신성한 시’라는 부제가 붙은 그의 교향곡 3번은 우주의 생성을 표현했으며 각 악장은 특정한 색과 분위기로 묘사된다.
스크리아빈 교향곡 3번 https://youtu.be/blcZUHDdnQ8?si=aHhJBGafg91uUqxG
스크리아빈의 교향곡 5번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도 소리와 색깔을 결합시킨 작품으로 유명하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일종의 협주곡 형식인데,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파트 외에 색채가 제3의 파트로 등장한다. 작곡가는 색광 피아노라는 것을 사용해 건반을 누를 때마다 상응하는 색을 투사하는데, 초록색은 물질 세계, 붉은색은 언젠가 파멸할 이승 세계, 그리고 푸른색과 보라색은 이성의 색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절묘하게 변하는 색감의 세계는 관객에게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신비코드라는 특정한 코드를 사용했으며, 10개의 다른 음을 쌓아올려 만든 화음이나 6성부 대위법 등 심오하고 복잡한 화성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스크리아빈 교향곡 5번 https://youtu.be/10ESN_t7txI?si=MpKRorFL0IWWZlJh
음악 사상 가장 신비로운 작곡가로 손꼽히는 스크리아빈의 작품들과 주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미사가 색깔로 표현될 수 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2월 23일, 류재준 그레고리오(작곡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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