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여행52: 성령 강림 대축일 | |||
---|---|---|---|---|
작성자주호식
![]() ![]() |
작성일2025-06-12 | 조회수14 | 추천수0 | |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52)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은 부활 시기의 마지막 날이며, 사도들에게 성령이 강림해 구원의 사명이 완성되었고 그리스도가 하시고자 했던 일이 완성된 날이다. 사실상 그리스도교 교회의 설립일이다.
유다인들에게 이날은 처음 수확한 농작물을 바치는 날이자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나이산에 오른 오순절(Pentecost)이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한 현상을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로 내려앉았고, 성령이 능력을 주시는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서술했다. 일찍이 바벨탑을 세우려던 인간의 무모하면서도 오만한 욕심을 흩트리려고 주님께서 각기 다른 언어로 징치(懲治)하셨다면,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단으로 언어를 선택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바벨탑의 전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리스 신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도 바빌론 수호신인 마르두크를 기리기 위해 에테멘앙키라는 신전을 세울 때 수많은 언어의 난립으로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료가 있으며, 라틴어 저술가인 히기누스(Gaius Julius Hyginus)의 저서 「파불라」에서도 온 인류가 제우스를 한 언어로 찬미하였으나 이를 질투한 헤르메스에 의해 다양한 언어가 등장했다고 한다. 관심이 있는 독자는 언어(로고스, Logos)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언어는 철학적 관점에서는 이성의 논리, 즉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다뤘던 작곡가 올리비아 메시앙은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Messe de la Pentecôte)를 작곡했다. 특이한 것은 오르간만으로 연주되는 작품이라는 점과 전형적인 미사 형식을 따르기보다 스토리텔링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리듬을 차용한 첫 곡 ‘불의 언어’(Les langues de feu)부터 인도의 힌두리듬이 특징적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s choses visibles et invisibles), 순수한 새소리와 오르간의 전 음역대를 가로지르는 강렬하고 파괴적인 화성이 인상적인 ‘영혼의 바람’(Le vent de l''Esprit)까지 신비하고 정열적인 성령을 묘사한다. 익숙하지 않은 화성과 음색의 연속이지만, 다른 언어를 통해 강림하신 주님의 성령을 바라보는 것처럼 편견 없이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메시앙의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https://youtu.be/De_Du56jOmM?si=ZED4kE_JydrXwAmV
덴마크의 작곡가 루돌프 닐슨(Ludolf Nielsen)의 바벨탑(Babelstarnet Op. 35)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비올라 연주자이기도 했던 닐슨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장중하고 색채감 깊은 작품을 작곡했다. 무모한 욕망과 갈등, 주님이 내린 벌을 받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감성을 절묘하고 웅장하게 그려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동시대이자 같은 나라 작곡가 칼 닐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작곡가라고 하니 참고 바란다.
루돌프 닐슨의 바벨탑 중 2부 ‘격정적으로 빠르게’ https://youtu.be/xlpRsPmZRyI?si=o_VcQWoXbM2NgM5m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6월 8일, 류재준 그레고리오(작곡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