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당 찬양대는 왜 악보를 안 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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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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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15 | 조회수298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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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성가게시판에 글이 없어지고 알림들만 남겨져서 소소한 생각들을 나누면 좋겠다 싶어서 저부터 올려봅니다. ------------------------------------------------------------------------------- 성당 찬양대는 왜 악보를 안 사?
하는 일이나 전공에 따라서 성향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대체로 성악이나 관악을 하는 분들은 일단 성격들이 활달하고 외향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 현악이나 작곡을 하는 분들은 보통 조용하고 내향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작곡하시는 분들을 모임에서 만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데, 우연히 어느 세미나에서 많은 성가 작곡가 분들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로 개신교 성가 작곡가 분들이 모인 자리였는데, 곡 제목만 대도 개신교 성가대 뿐 아니라 가톨릭 성가대들도 다 알만한 분들이 많은 그런 자리였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느 유명한, 평소 친분이 있던 선배 작곡가 분이 제가 가톨릭 신자인 것을 알고 물었습니다. “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왜 성당 찬양대는 악보를 안 사?” 개신교는 ‘성가대’라는 용어 대신에 ‘찬양대’라는 명칭을 많이 써서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저는 머뭇거리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대답을 했습니다. “글쎄요, 사정이 있어서 악보를 구입하고 복사를 해서 쓰지 않을까요?”
“내 곡을 성당에서 연주해주는 것은 일단 너무나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내 곡 뿐 아니라, 난 한번도 성당 찬양대에서 악보를 구입해서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사실 저도, 운영하는 출판사 업무의 일환으로 매주 100개의 성가대 유튜브 채널의 선곡을 모니터링 하지만, 저 역시 우리 가톨릭에서 개신교 성가대 곡을 선곡하여 부르는데 있어서, 악보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지난번 업로드 했던 글에서 잠깐 언급한 것과 같이 국내 개신교 작곡가의 곡들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대부분의 개신교곡에 대해서도 악보를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외국인들이 와서 놀라는 것들이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카페나 공공장소에 핸드폰 등 개인 물건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의 물건에 별 관심이 없는 대한민국인데, 딱 하나 예외가 바로 ‘자전거’ 입니다. 다른 물건들은 다 안가져가는데 자전거는 누구나 한번씩 도난을 당한 기억이 있을 만큼 많이 없어집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짓지 않으려고 무던하게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위의 자전거의 예 처럼 딱 하나 의외의 모습이 ‘악보 무단 복제’ 입니다. 성가대를 수십년간 오래한 사람도, 복사해주는 성당 사무실도, 지도 신부님이나 지도 수녀님도 악보 무단 복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전혀 이상함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고, 우리나라 모든 성당 성가대가 다 그렇게 하니까요. 성가대를 수십년 했던 단원들도 성가대 들어올 때부터 그렇게 해왔고 아무도 그에 대해 뭐라 하는 경우가 없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명감 까지 가지고 허락도 없이 저작권이 있는 남의 곡들의 악보를 nwc로 파일화 해서 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톨릭 성가대를 위해 도움 되는 일을 한다고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불법입니다.
이런 악보 불법복제 현상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가톨릭에서 성가대용 악보를 출판하는 출판사는 모두 사라지거나 더이상 새로운 출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게 벌써 20년은 족히 넘은 것 같습니다. 현재 성가대용 창작 합창 성가를 출판하는 출판사는 저희 에파타 뿐 입니다. 외국의 가톨릭곡을 들여와 번역하고 출판하는 곳은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전례에 쓰일 가톨릭 성가대용 악보들이 씨가 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성당 성가대들이 사용하는 악보는 점점 다 개신교 악보가 잠식했습니다. 국내곡이든 외국곡이든 다 개신교 악보로 미사 전례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개신교 출판사이다 보니 성가의 번역이나 표현도 점점 개신교식으로 바뀌어 갑니다. 가톨릭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과 단어들이 쓰이고, 웃지 못할 경우도 많은데, 예를 들자면, Mozart의 미사곡 중 ‘Gloria’ 인데, 유튜브 채널에 올린 제목을 보면 ‘영화롭도다’라고 해놓습니다. 가톨릭의 출판사에서 번역을 했으면 그냥 ‘대영광송’인데, 개신교 출판사의 번역을 그대로 쓰다보니 ‘영화롭도다’라고 쓰는 것입니다. 개신교 성가 출판은 20여년 전부터 쭈욱 발전해서 지금은 창작 성가곡을 출판하는 곳이 10여 군데나 됩니다. 제대로 된 교회는 성가대가 100명이든 200명이든 모두 다 인원수 만큼 악보를 구매해서 사용합니다. 꾸준하게 출판이 계속 되고, 새로운 성가가 계속 많이 나올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단 복제로 악보를 가져다 쓰기만 했던 결과, 선곡에 있어서 개신교 악보에 완전히 잠식당했고, 그 개신교식 번역을 20~30년 사이 받아들이는 동안 점점 우리의 표현도 개신교식 표현으로 동화되어 갑니다. 얼마전, 가톨릭 신문과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몇% 정도로 성가대에서 개신교 곡을 부르냐고 물어봤을 때 어림 짐작으로 70% 이상이라고 답을 했었는데, 사실 90% 이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성가대 채널들은 적어도 한번씩은 저희 에파타 성가를 선곡해주신 곳들이니, 그렇지 않는 성가대들은 훨씬 더 비중이 높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사 때 성가대에서 새로운 성가를 부르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 입니다. 주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노래 부르고 싶어서인지. 미사가 주님을 위한 제사이고 우리가 드리는 성가가 주님께 드리는 제물인 것이 맞다면, 성가대에서 악보를 무단 복제 하는 것은 훔친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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