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침 영광송'과 '아멘'을 노래하는 법 | |||
---|---|---|---|---|
작성자김종헌 | 작성일1999-05-29 | 조회수2,07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마침 영광송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과 그 응답 환호송 '아멘'
성찬기도의 전통적인 결론은 찬미와 감사의 장엄한 언급으로 끝났으며, 이 결론은 주로 삼위일체의 영광송의 형태로 되어 있었고 신자들은 이에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이 마침 영광송과 아멘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2세기 중엽 유스티노 성인에 의해 잘 증명되었다. 성인은 이 영광송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요구하면서 "감사의 기도가 끝날 때, 예절에 참여한 모든 신자들은 아멘으로 자신들의 동의를 나타내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호교론 1, 65:3).
옛 교황 전례에서는 수석부제가 기도문의 결론 부분에서 성작을 높이 들었으며, 교황은 축성된 성체를 그 성작에 대고 있든지 아니면 성체를 단순히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동작은 백성들의 마지막 환호가 끝날 때까지, 즉 이 아멘 환호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세기에는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십자가 표시를 도입하여 이 행동을 짧게 만들었다. 14세기 때부터 사제는 성작을 제단에 놓고, 장궤한 다음, per omnia saecula saeculorum (세세에 영원히..) 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결론의 기도는 곧 뒤따라 올 주의 기도의 도입부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종종 '작은 영광송'이라 불리던 이 기도 형태는 16세기의 트렌트 전례에서는 사라졌다가 바티칸 제2차 공의회 이후에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이 다시 복구되었다. 빵과 잔은 마침 영광송이 사제에 의해 노래되거나 낭독될 동안 봉헌의 동작으로 높이 들어 올려진다. 만약 부제가 있다면 성작은 부제가 들어올리게 된다. 이때 모든 신자들은 찬성과 지지의 표시로 아멘으로 환호한다. 이렇게 신자들은 이 장엄한 아멘 기도를 통해 사제에 의해 낭독된 성찬기도에 동의하며 이 기도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다.
이 응답을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멘을 반복하고 증가시킬 수 있다. 성가대는 백성들의 환호에다 화음을 더 할 수 있고 이를 계속해 전개시킬 수 있으며 (Music in Catholic Worship, 미국 주교회의 58항) 다른 장식의 성부를 덧붙일 수있다.
감사 서문경에서부터 주의 기도의 영광송까지 계속되는 대 성찬기도는 미사성제의 가장 핵심 부분이다. 따라서 이 마침 영광송은 가장 중요하고 장엄하게 노래되어야 한다. 이 기도의 분위기 역시 영광스럽고 장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주례자는 감사를 드리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아멘' 혹은 감사를 노래함으로써, 두 가지 행위는 하나의 감사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이 성찬의 전례는 사제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온 백성에게 속하는 행위이며 기도이다. 교회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희생의 기념 안에 실지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당신의 지체인 신자들을 위해 성체 성사 안에 자신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린다.
마침 영광송에 대한 우리의 응답 (아멘) 아멘이라는 두 개의 음절로 사제가 외운 긴 성찬기도를 우리가 동의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옛부터 동방의 전례들은 아멘을 세 번 노래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바로 이렇게 세 번 노래함으로써 환호송의 풍성한 가치를 나타내었고, 이 해결책은 전례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근거가 확실하고 합법적인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의 가톨릭 성가집에도 10개의 '아멘' 환호송 모두가 이렇게 세 번 반복함으로써 그 의미와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지만 과연 각 본당에서 여러 가지의 아멘을 이용하는지 의문이 간다. 매번 바꾸는 것은 좋지 않지만 시기와 축일의 등급에 관계없이 일년 내내 같은 곡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겠.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이 환호성을 유도하는 '마침 영광송'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이 사제에 의해 노래 불리어질 수 있도록 한 곡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새 미사통상문에 따른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곡 I, II, III, IV에 이 마침영광송이 작곡되어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성가집에는 들어가 있지 않으니 아무래도 사용도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작곡가들은 우선적으로 미사 거행에 필요한 이런 전례문을 바탕으로 한 작곡을 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입당, 봉헌, 영성체, 퇴장 등의 찬미가는 지금 성가집에 있는 것으로도 충분할 정도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많은 환호송과 전례문을 작곡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례문을 만들 때는 미사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는, 즉 말하는 속도의 노래 (Speech-song)가 적합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곡의 음악성이나 신자들의 반응만을 생각하여 쓸데없이 곡을 길게 장엄하게 만드는 것은 적어도 전례문을 바탕으로 한 노래로는 알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성가집의 '아멘' 10곡도 2/2박자의 곡으로 단축시켜 노래한다면 미사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도 장엄한 환호성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환호성을 이렇게 4성부로만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아멘이 끝나는 부분에서 성가대가 discantus를 노래하는 등 아멘을 확장, 증가시키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렇게 '아멘' 환호가 길게 장식되어 노래되더라도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성체와 성작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울러 밝힌다. 마치 영성체 때에 사제가 성체를 들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하고서는 신자들이 쳐다 볼라치면, 금방 내려 버리기 때문에 기도와 동작이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전례를 연출하는 것과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