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헌장 112항 (c,d) 본문과 해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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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헌 | 작성일1999-08-02 | 조회수1,68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112항 (c): "그러므로 성 음악은, 혹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일치를 초래하며, 혹은 거룩한 의식을 더 성대하게 감싸주면서, 전례 행위와 밀접히 결합하면 할 수록 더욱 거룩해 질 것이다. 그리고 성 교회는 필요한 성질을 갖춘 건전한 예술의 모든 형태에 찬동하며, 또한 그것을 전례에 도입할 것을 허용한다."
이 마지막 말에 의해서도 분명히 나타나듯 교회는 어떤 곡의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전례에 사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노래는 전례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 1967년의 지침에 따르면 "의식의 각 부분의 목적이나 특징, 노래의 목적이나 특징을 주의 깊게 존중할 필요가 있다."(지침 6조) 옛부터 전해져 온 어떤 노래가 현재에도 아직 봉사적 역할을 다한다면 "지역 사정이나 신자들의 영적 이익을 잘 생각한 다음에" (지침 51조) 이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지역 사정이나 신자들의 영적 이익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전례의 새로운 규칙이나 요구"(지침 59조)에 맞는 해결을 꾀해야만 한다. 새로운 전례 안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커다란 종교적 가치가 있는 곡은 이를 미사 이외에 예컨대 말씀의 전례에서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지침 46조). "전례 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노래하거나 16세기의 다성부의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현대의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 노래에 맡겨진 참다운 봉사적 역할을 다하게끔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그리스도교 신자 단체는 그 단체의 특유한 정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적 능력'을 갖고 노래한다면 더욱 인간적으로 뛰어난 전례를 행할 수 있고 또 전례 의식은 더욱 진실한 것이 된다." (L. Deiss, C.S.Sp., "La fonction ministerielle do la musique dans la liturgie" dans Eglise qui chante n. 79-80. Paris, Juin 1967.) 공의회의 전례 헌장은 성음악의 일반적 효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즉 성음악은 기도를 마음의 표현으로 하고 신자의 영혼을 일치시키며 의식을 더욱 장엄하게 한다.
(1) 첫째로 "성음악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한다."(112조) 여기서 이미 인용한 성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계속 인용하겠다. "이들 거룩한 말을 노래하지 않는 경우보다는 노래할 때가 내 마음을 더욱 경건하고 더욱 격렬한 열의에 차게 함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움직임이 노래나 소리 안에 있는 신비적인 것 즉 우리의 마음과 밀접히 결부되어 이를 움직이고 자극하는 신비적인 것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Confessiones X, 33 : PL32, 800.)
교회가 음악의 힘, 즉 말씀을 높여 주는 힘 을 중시하고 있는 것은 전례 의식 가운데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전례 의식에서 하느님은 그 백성에게 말하고, 한편 백성은 노래와 기도로써 하느님께 응답한다. "성교회가 … 노래할 때에도 … 이에 참여하는 자들의 신앙이 양육되고 그들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고무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께 영신적 봉사를 수행하게 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더 풍부히 받게 하는 것이다."(전례 33조) (또한, 성무일도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83조 및 84조와 모든 경우, 특히 시편 가창의 경우에 '마음과 말을 일치시킬(mens concordet voci)'것을 요구했다. 90조 함조.) "내가 노래부를 때 나의 소리는 이야기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더 맑게 된다는 것뿐 아니라 노래할 때 우리는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노래할 때, 말할 때의 내 고유 억양을 버리고 더욱 객관적인 억양을 붙인다. 회중도 이를 알아차리지만 이 객관적인 억양이란 이미 신자들 안에 미리 존재했던 것이다. 선율을 붙여 노래된 말은 단순히 관념 이상의 노래이다." (Dr. Helmut Hucke, 'Le "Munus Ninisteriale" de la musique dans le culte chretien', in Le chant liturgique apres Vatican Ⅱ, Paris 1966.) 우리의 존재는 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2) 둘째로 전례 음악은 '일치를 초래하며'(112조)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하나의 소리(una voce)'를 내는 것은 말로써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억양을 버리고 신자 전체가 노래할 때 쓰는 억양을 써야만 한다. 말할 때의 고립성에서 탈피하고 노래할 때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우리는 노래할 때,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보통 행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 노래를 불러 성체를 영한다면 그것은 전례에 가장 인간적인 형식이고 또 가장 친밀한 표징으로써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Dr. Helmut Huck, op. cit., pp. 37-38)
신자들의 노래만큼 신자들의 일치와 사랑에 의한 일치를 잘 드러내는 것은 없고 같은 말을 쓰는 것뿐 아니라 같은 리듬과 같은 음으로써 이루어지는 노래만큼 신자들의 마음을 잘 일치시키는 것은 없다. 전례 헌장도 말하고 있듯이 "그리스도는 교회가 기도하고 그리고 노래할 때에 전례 의식 안에 현존한다."(전례 7조) 또 신자들이 전례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되고 유효한 방법은 노래인 것이다(30조).
(3) 그리스도가 전례 의식 안에 현존하기 때문에 의식을 될 수 있는 대로 장엄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식을 장엄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음악이 필요하다. "성음악 때문에 주 그리스도와 일치한 교회는 하느님을 훌륭하게 찬미 할 수 있다." (비오 12세 회칙 Musicae Sacrae Disciplina, n. 29.) 전례 헌장은 비오 12세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있다(112조). 따라서 전례 의식 전체를 통일하는 성음악은 의식 안에 있는 기쁨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전례 의식은 참다운 축하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하느님의 예배에 도입할 것을 인정한다." (112조)
음악은 "거룩한 성격과 뛰어난 형식을 갖고" (지침, 「Musicam Sacram」, n. 4. A.) 있어야만 한다. 성음악에 대한 이상의 세 가지 규정은 성비오 10세의 생각을 이어받은 것이다. 여기서 거룩한 성격이란 단순히 '세속 음악'에 대립하는 의미에서 '거룩한 음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례 의식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만 거기서 쓰이고 있는 음악이 거룩한 것인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즉 음악이 의식의 주체인 신비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때 그것은 거룩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 작품이 아니고 음악의 사용 방법이다. 한편 '뛰어난 형식'에 대해 판단할 경우, 순전히 미학적인 규준을 사용할 수 는 없다. 전례 음악에 요구되는 뛰어난 형식이란 전례 의식의 각 순간에 있어서 음악에 요구되는 봉사적 역할을 완전히 다하는 일이다. 전례 음악이 봉사적 역할을 다한다고 해도 의식 안에서 음악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확립되는 것이다.
이 봉사적 역할은 예컨대 모든 사람이 노래할 수 있게 한다는 순전히 실용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동시에 또 영적인 역할, 즉 인간 정신의 가치, 특히 신비적 가치의 실현을 돕는다는 역할 도 가리키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눈에 보이는 존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로 이끄는 역할, 즉 예술 자체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112(d) "성교회의 전통과 법규의 기술과 훈령들을 준수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지향하는 성가의 목적을 고려하면서 거룩한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전례 헌장은 제113조에서 제121조까지 우리가 이제까지 설명해 온 교회의 전통적 규율을 설명함과 동시에 새로운 규칙을 제시해 모든 면에서 재검토를 하고 있다. 모든 수단을 다해서 교회 전체가 일치하여 전례 성가에 참여한다는 위대한 전통을 살리고 그로 인해 노래가 그 목적,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 (성비오 10세, 자의교서, n. 1.)란 목적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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