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게시판

제목 싱거운 이야기 (3)
작성자김종헌 쪽지 캡슐 작성일1999-09-16 조회수1,482 추천수2 반대(0) 신고

굿 뉴스 자유 게시판 6877의 "젊은이와 늙은이의 차이는?" 이란 기사를 전산 정보실에서 번역을 해서 6920에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누군지 몰라도 짖궂게도 많은 관찰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의 10개월동안 굿 뉴스에서 여러 많은 분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대하면서 "참으로 젊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무늬만 젊다고 젊은 이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저도 한 때는 젊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젊은 이들 같이 "청춘 예찬론"을 부르짖지는 않았습니다만 청년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부터인가 그 중요한 시기를 잘 보내지 못한 젊은 이였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하곤 합니다.  그 때 그 중요한 청년시기에 미리 준비했더라면 지금 내가 준비하는 이 시간을 활용하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마지막 용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지금 이 나이에라도 시작하는 것이 제 생에서는 가장 빠른 시기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젊은 이는 교회 안에서나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중요합니다. 무늬가 젊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큰 일을 해야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긴박성이나 그 농도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젊은 이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실수하는 것을 언제까지나 젊은 이의 무슨 특권이나 자랑감으로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사회나 교회는 곧 어른이 될 지금의 젊은 이들의 손에 의해 인간을 위해 하느님 손길 안에서 언제나 새롭게 변화되고 발전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과 교회, 어쩌면 준비되지 않은 세대로 인하여 세상과 교회가 퇴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이것이 바로 위 글에서 말하는 "대체적으로 젊은이는 낙천적이지만 늙은이는 비관적이다"라는 지적과 맞는군요..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젊은 이의 중요성은 무늬가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고 곧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고, 야무지게 준비해야 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아래 글들은 전주 교구 이병호 주교님께서 쓰신 책 신앙인의 사색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1988, 17 -18)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젊다는 것은, 아니면 늙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늙은 이’를 "늘 그이", ’항상 그 사람’으로 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의 그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에게는 대단히 흥미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언제부턴가 더 이상의 성장이나 발전이 중지된 채 그 상태에서 고정되어 버리면, 그의 나이에 관계없이 그는 늙은 이다.

 

그러면 어린이는 누구인가? 그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혼자 서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립이라든가 자족을 위장하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받아서 메워야 할 빈 구석을 그대로 드러내 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우리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길어내어 그들에게 건네 줄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한다.

 

이런 어린이가 어떤 기회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쌀쌀한 눈총을 받고 자기의 허점과 부족을 은폐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어린 시절을 상실한다. 그렇게 되면 그 안의 어린이는 늙은이의 껍질에 갇혀, 성장할 기회를 잃고 점점 더 굳어져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거의 모두, 성장을 중지당한 채 굳어져가는 늙은이의 껍질 속에 갇혀있는 어린이를 그 속에 지니고 있다.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심은, 그분의 눈에 모든 이가 어린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이 세상에서 하신 일은, 사랑의 결핍증으로 굳어진 껍질 속에 갇혀 있던 어린이의 생명력과 생장력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었다.

 

우리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른다 함은 (마르 8, 34 참조), 우리로서도 그분의 그 일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분을 만남으로 해서, 사람들의 막혔던 귀가 열리고, 굳혔던 혀가 풀리며, 뻣뻣하던 사지가 유연해 졌던 것처럼, 그 비슷한 일들이 오늘의 주변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내, 남편, 자녀, 친지, 동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세월따라 계속 굳혀져가는 늙은이의 처지에서 풀려나와, 한 치라도 더 성장하고 새로운 생명의 힘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읽으시느라고 고생많으셨습니다. 늘 그렇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늙은

이랍니다. 우리는 애 늙은 이가 되지 맙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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