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저희 성가대 이야기 - 작년 연주회를 마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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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섭 | 작성일1999-10-25 | 조회수1,593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잠원본당 라우다떼성가단의 이봉섭 바오로입니다.
가슴 울리는 이야기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하나 하나에 감동하고 가슴 아파하고 또 생각과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힘들어하고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주님 안에서 힘을 얻으시기 빕니다. 이분들 위해서 다시금 기도하겠습니다. 우선은 이런 공간이 있어서 많은 이들의 고민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따로 떨어져서 몇몇이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테니 말입니다. 계속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방법들을 밝혀 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여러 본당과 단체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계속 많이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안에, 여기서 논의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생생히 녹아 있습니다. 저도 그 안에서 많이 느끼고 배웁니다. 그러면서 저희의 이야기 역시, 그것이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간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의 모습들, 저희가 하는 생각들, 노력들, 시도들이 하나의 ’실제 사례’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감히’ 이런 글을 올립니다. 모자람 많은 저희 복음묵상 내용을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아래 글은 작년 11월, 저희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쓴 글입니다. 원래 저희 본당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1년 다 된 지금까지도 조회수 12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가깝고 공개된 자리에 올릴 것을 염두에 둔 데다가 그 날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쓴 글이라, 상당히 밝은 ’성공담’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복된 일로 문제들이 다 사라질 리는 없지요. 다른 많은 단체와 마찬가지로 저희 역시 계속해서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가진 사람, 열심한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이 섞여서 계속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계속되는 노력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사람끼리의, 사람만을 지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제 14회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라우다떼 성가단이 생긴 지도 십 수년이 지났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본당에서 전례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며 여러 면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성가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라우다떼는 또한 훌륭한 친교의 장이며 휴식처이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함께 모여 노래하고 음식도 들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렵고 각박한 일상에 지친 단원들에게 있어 참으로 소중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는 만큼 라우다떼가 참다운 신앙단체로서의 모습을 가져 오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성가에 담긴 기도의 의미를 별로 살리지 못한 채 노래하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성가대가 노래를 잘한다고 했지만, 그 노래가 과연 사람의 영혼을 고양시켜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성가였는지 돌이켜 봅니다. 성가를 택할 때 어떤 곡이든 ’주님’ 같은 낱말만 들어 있으면 괜찮다고 여기지는 않았는지, 하느님과 신자들에 대한 봉사로서의 성가가 아니라 우리 기분에 재미있고 즐거운 노래를 추구한 것은 아닌지... 지금 나름대로 이런 문제를 고민한다는 저 역시 89년부터 루멘성가단(본당 중고등부 성가단)에 있으면서 단체를 일으키려는 열정에 불타면서도 참된 신앙단체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신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성당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전의 라우다떼에서도 신앙적으로 부족한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지쳐서 개선하려는 노력들을 계속하지 못해 왔습니다. 개인들의 생각은 있었어도 그것이 여러 사람의 지속적인 노력과 기도로 합쳐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또 많은 시간이 흐르다가, 올해 들어서는 감사하게도 여러 계기들을 통해 보다 여러 사람들이 여기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성가를 고를 때, 전례헌장을 비롯한 공의회 문헌들에서 볼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 정신에 맞게 신앙적인 깊이와 전례에의 적합성을 숙고하며 정성들여 선택하였습니다. 수녀님의 도움을 얻어 가며 주일마다 그 주의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미사를 더욱 뜻깊게 봉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모임 앞뒤에 기도하는 것에도 각자 더욱 정성을 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저희가 참으로 주님을 향하는 신앙단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본적인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놀던 아이가 공부하러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해도 쉽게 내키지는 않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직장인들은 보기에 애처로울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학생들마저도 결코 편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라우다떼에 와서는 모든 부담스런 것에서 벗어나서 다만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이곳이 달라진다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달갑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들은 이 노력에 같이 따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라우다떼는 비록 조금씩이지만 주님 안에서 변화해 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따르는 가운데 그분께 받는 평화는 우리끼리만 놀면서 얻는 재미와는 분명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지금 라우다떼가 주님을 향하고 그 평화가 이 안에 감돌아서, 우리 후배들은 부담없이 함께하면서도 이 평화에 그냥 젖어 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던 중 제 14회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연주회는 보통 1년에 한 번 가지는 저희의 큰 행사입니다. 성가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주일에 성가로써 봉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발표회는 저희의 단합을 다지고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큰 규모의 곡을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정 시간동안 많은 성가를 집중적으로 바치기 때문에 잘 한다면 단원들과 청중들의 신앙을 높이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발표회에서 대부분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잘 노래하는가에만 신경을 썼고, 여전히 성가의 뜻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듣는 이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데에는 소홀했습니다. 올해 들어 이루어진 라우다떼의 성화를 위한 노력들은 이제 발표회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발표회가 위령성월인 11월에 있기 때문에, 이에 맞게 중심곡을 포레(G. Faure)의 <레퀴엠(Requiem : 위령미사)>으로 정했습니다. 여러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신앙적이고 전례적인 곡의 하나로 생각되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다른 곡들도 레퀴엠의 분위기와 어울리면서 전례에 어울리는 곡들로만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앙코르에서 크고 빠른 곡으로 청중들을 즐겁게 하던 관례마저 깨고, 모차르트의 <Ave Verum>으로 한없이 고요하게 막을 내림으로 해서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도의 분위기를 기억에 담아 가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너무 재미없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불만이 있었습니다. 발표회가 가질 수 있는 축제적 분위기를 많이 희생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희 자신이 마음이 담긴 성가로써 기도하지 못하면서 저희와 청중들을 재미있게만 할 수 있다면 성가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번 발표회는 저희의 이런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데에 그 큰 의미를 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음악성을 위해 라틴어 원문 가사를 쓰는 경우에도 그 뜻을 적어 가며 묵상하고 표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어 레퀴엠을 막연히 바치는 것보다 각자 주위의 돌아가신 분을 위한 지향을 두고 기도하면 더욱 그 기도를 마음에 담아 바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와서, 각자 이러한 지향을 두면서 또 발표회에 오는 다른 분들도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번 발표회는 준비가 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곡 자체도 잘 소화해 내기 어려운데다 새로운 모습과 태도를 가지고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또 시대가 어려운 탓에 더욱 체력적으로 힘든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열심히들 준비했습니다. 어렵게 준비하면서, 또한 각별한 의미를 가진 연주회였기에 여러 사람들이 더 많은 기도를 바친 것 같습니다. 지난날의 허물을 뉘우치면서 주님께 매달리던 다윗을 생각하며 저도 기도했습니다. "주여 내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당신의 찬미 전하오리니."
저는 감히 말합니다. 지난 11월 21일, 저희는 프로 합창단이 만들지 못하는 성음악을 바쳤습니다. 이제는 다른 이들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저희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울려나온 음악도 -- 비록 부족하고 어설픈 데도 있었지만 -- 저희가 연습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단순히 무대에서 정신을 차려서 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성가가 시작된 이후로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면서 저희를 당신의 찬미를 전하는 도구로 쓰고 계시는 것을, 그 거룩한 기운이 단원들 사이에 감돌고 있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감격에 겨워서 노래한 적이 있었던가... "호산나!"를 부를 때 결국은 목이 메고 눈물이 글썽이더군요. 끝난 다음 지휘자와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기뻐하던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 원수들 무색케 하시고자, 불신자 복수자들 꺾으시고자 어린이 젖먹이들 그 입에서마저 어엿한 찬송을 마련하셨나이다. (시편 8)
한편으로 열심히 준비했다지만, 여전히 저희는 미진한 것이 많았습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아직 젖먹이, 어린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겨우 조금 열어 드린 마음의 문 사이로 주님께서 기꺼이 들어오셔서,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고 저희 마음을 드높여 주시며 어엿한 찬미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저희의 감사가 한없이 모자람을 느낍니다.
이번 일은 저희에게 참으로 큰 은총이었고, 앞으로 라우다떼가 올바르게 발전하는 데에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매 전례 때마다 합당한 성가를 주님께 봉헌하면서 그 가운데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워 주님께 다가가도록 돕는 것이 저희의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거의 이러지 못하고 잠깐 동안만 또는 몇몇 개인들만 그나마 기도다운 성가를 바쳤는데, 주님의 은총으로 이번 발표회에서는 함께 영적으로 들어올려져서 찬미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저희가 앞으로 더욱 참된 신앙단체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나아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저희 안에서도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모였고 신앙적으로 성숙하지도 못하여,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과 그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게 되기를," 그리고 그 뜻대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라우다떼뿐 아니라 모든 청년단체들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위치와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도와 주십시오. 모임 안에 신앙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가능한 많이 있어서 그들이 함께 노력하는 것, 그러면서 지치려고 할 때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많이 느꼈습니다. 올해 본당에서 청년단체장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신앙교육 등으로 주님과 가까이할 기회를 주신 것 역시 이런 의미에서 매우 깊으신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계속 주님을 향하는 모습이 이어지도록 돌보아 주시고 다독거려 주십시오. 그리고 사람들끼리 어울려 노는 것도 소중한 것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처음부터 신앙이 돈독하지 못했던 개인은 이런 과정에서 신앙단체에 부담없이 어울릴 수 있습니다. 메마른 현실 속에서 어려워하는 많은 이들이 부담없이 단체에 어울려서 함께 즐거워하면서, 그 안에서 어느덧 주님의 사랑과 평화에 젖어 깊은 신앙의 길을 가게 되기를 다시금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가운데 그 단체의 참된 역할에 충실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단체들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1998. 12. 4. 이봉섭 (바오로)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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