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홍연택 선생님을 추모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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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영일 | 작성일2001-06-05 | 조회수70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존경하는 홍연택 선생님
TRINITAS 합창단의 게시판에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많지 않은 작곡과 제자중에서 유일하게도 저는 서울가톨릭 합창단의 단원이었기때문에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선생님은 저에게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훌륭한 작곡가가 될려면 많은 음악을 감상하여야된다고 하시면서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가지고 있었던 가게에서 여러곡의 음반을 추천도 하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들은 장안의 몇 안되는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감상하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고가품이었던 수입품 원반의 음반을 개인이 소장하기에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선생님 당시에는 악보가 너무나도 귀해서 문선생님과 상호 형님이 직접 가리방을 긁어서 프린트를 한 악보를 가지고 미사때에 사용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젊어서는 가톨릭합창단원으로, 그리고 하대응 선생님 다음으로 지휘자로 서울가톨릭합창단을 키우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렸을때 명동성당 주일학교 성가대원으로 몽량이와 성욱이와함께 문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을때에 서울가톨릭 합창단의 아름다운 성가소리는 정말로 천사들의 소리와 같다고 착각 할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였습니다. 주일학교 성가대원인 저희들을 많은 형님들은 매우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대학생이 되어서 서울가톨릭합창단에 입단할 적에는 예외없이 오디션을 보셨지요. 선생님은 음악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으셨습니다.그래서 형님들은 선생님을 "핏때"라고 하였죠. 그 유명한 "홍 핏때"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점차적으로 세월이 흐르다보니 선생님은 연습도중에 일체 단원들에게 칭찬을 한적이 없고,오로지 야단만(?)하시는 매우 엄격한 지도방법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어쩌다 한번 선생님이 웃으시면 이것은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가톨릭합창단의 그당시 실력은 많은 서울의 음악가들이 12시 미사에 전례음악을 들으러 올 정도 였습니다. 선생님 어떤 축일에는 이문근신부님이 오셔서 당신은 반주를, 선생님은 지휘를 하시면서 미사를 보다 더 음악적으로 한 차원 높게 하신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노기남 주교님의 낭랑한 목소리와 정확한 음정으로 창하셨던 모습, 대전교구장이신 경주교님께서 부제시절에 망예수 부활시, 짧은부활찬송을 하셨는데 이때에 너무나도 정확하게 창하셔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였던 대단하신 음악실력. 양기섭 본당신부님의 합창단에 대한 사랑과 선생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지원등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서울가톨릭합창단의 유명한 solist 마리안나 누이(sop), 현진이 형(ten), 영수 형(ten), 관수(bass)형,등등 선생님 저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신적도 계셨습니다. 네가 종교음악을 할려고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종교음악과에 지원할려고 했다니 말인데 "종교음악은 배고프다" 라고 말입니다. 일생을 바쳐서 한국천주교회의 성음악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던 선생님. 또한 그러한 일로 인하여 엄청난 부담과 허탈감과 상처를 받으셨던 선생님. 이러한 한국천주교 교회음악사의 한페이지를 담당 하셨던 선생님의 장례미사를 청춘을 다 바쳐 봉사 하였던 명동주교좌 대성당에서 이루어지지못했던 부분에 대하여서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되어집니다. 선생님 이 못난 제자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슬픈 마음을 안고 삼가 고개 숙여 깊이 기도드립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선생님.
못난제자
정영일(Balthazar)올림
쌍문2동 성가대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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