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여쁜 지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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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필수 | 작성일2001-12-05 | 조회수90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대전 자양동에 사랑의 집이란 지체 부자유자 15인이 거주하는 복지 시설이 있다. 프란치스꼬 전교봉사 수녀회 세 분의 수녀님들이 15명의 성인 남자 식구를 위해 봉사를 하고 계시는데 일반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밝고 청결한 내부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곳에는 매주 3회 목욕 봉사 팀이 방문하는데 한 7-8명이 한 팀이 되어 옷 벗기는 조, 목욕시키는 조 그리고 옷 입히는 조 등 3개 조로 나누어 한 한시간 남짓 봉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런 봉사이다. 아마도 목욕 봉사만을 위하여 한 5-6개 팀이 운영되고 있는 듯 하다.
우리 원자력 연구소 대건회는 2000년 초부터 매 짝수주 금요일에 성가 봉사를 해오고 있다. 미사때 부르게 되는 성가를 중심으로, 생활 성가, 부르기 쉬운 가요 등을 함께 부르며 그곳 식구들과 한시간 남짓 기타 반주에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봉사이다. 그런데 그곳 식구들 중 함께 어울려 노래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박수를 치던가 멍하니 노래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도이다. 그 중에 몸의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김주경이라는 젊은이가 한 명 있다. 자폐증과 정신 박약 환자인데 두 가지를 한꺼번에 시키면 한가지밖에 처리를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무거운 것도 잘 들어 나르는 사랑의 집의 가장 큰 일꾼으로 사랑의 집 내의 제반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주경이는 말은 어느 정도 하지만, 박자 감각이 전혀 없어 노래는 거의 하지 못한다. 가끔 흥이 나면 우리가 노래 부를 때 그저 혼자 일어나 지휘를 하는 정도이다. 박자 감각이 없으니 지휘랄 것도 없이 그저 손을 흔드는 정도이다. 그래도 주경이가 일어나 지휘(?)를 하게되면 왠지 모두가 하나가 된 듯 마음이 모아지는 듯 하고 성가를 하면서도 흥이 살아나는 것 같다.
이번 목요일 우리 궁동 본당 성전 완공 기념 성가 발표회를 준비하며 이번 주는 총 연습이라고 제대 앞에서 연습해 오고 있다. 연습이 부족한 사람들을 향하여 나를 보며 노래하라고 소리 치지만 음을 옳게 집으랴, 가사 보랴, 거기다 지휘자까지 보기에는 무리일 지 모른다. 그러나 지휘자를 보라고 소리 치는 내 입장에서 정작 단원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쪽은 내 쪽이다. 왠지 쑥스럽고 눈을 마주 칠 수 가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제대 앞에서 총 연습을 하면서 허공을 응시하다 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대상이 바로 제대 앞 벽 한 중앙에 모셔진 십자고상이다. 귀는 단원들의 소리에 집중하여 이것저것 지적을 하며 소리를 지르지만, 시선은 십자가상의 예수님에게 가 있게 되는 것이다. 언뜻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내가 과연 그 앞에 서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음악적인 자격에서부터, 신앙적인 부족함 등등. 그러나 내 시선에 들어오는 예수님의 표정은 우리가 사랑의 집에서 주경이를 바라 볼 때 흐뭇해하는 바로 그 모습이 아닌가? 음악성은 부족하지만, 또한 참석 못 한 이들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그분은 어여쁘다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시며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아 드리는 찬미의 성가를 흐뭇하게 듣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 부족한 저희 제물 어여삐 받아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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