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급단원문제의 토론을 읽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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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유재 | 작성일2003-08-14 | 조회수2,667 | 추천수34 | 반대(0) 신고 |
방성욱님의 유급단원 어떻게 생각하세요?에 가장 먼저 꼭 필요하다는 투의 글을 올렸던 이유재 입니다. 유급단원 문제는 성가대 여러분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기도 하고 또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올린 글때문이었는지 (약간은 가톨릭 음악계를 성토한...)토론의 분위기가 이제는 신부님들에 대한 성토로 바뀌어 버린 것 같군요(^^).
사실 신부님들의 성향에 따라 너무 좌지우지되고 있는 부분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합창음악이란 것이 지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5년, 심지어는 1년에 한번씩 신부님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니 지휘자로서는 거의 미칠 노릇이죠.
제 생각에는 유급지휘자 중에서 한 성당에서 10년 이상 지휘한 지휘자는 매우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역시 언제나 주임신부님이 바뀔때 마다 항상 불안하답니다. 이제 정든 성가대를 떠날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예로 제가 옛날에 지휘하던 성당의 청년성가대 지휘자님은 매우 많은 경력을 갖고계시고 실력도 뛰어나신 분이었는데 주임신부님이 바뀌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를 그만두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 왜 그만두셨냐고 물어보자 그분이 조금있으면 알게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1년쯤 지나 저역시 지휘를 그만 두었고 성당의 성가대는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제가 올렸던 글이 제 생각을 모두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미비한 것 같아서 몇자 더 올려봅니다.
1. 성가대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본당의 사제가 바뀌면 단체가 타격을 입는것은 성가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모든 단체들의 문제이지요. 그럼에도 성가대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가대라는 특성이 다른단체와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제가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거의 모든 사제들이 성가대를 본당의 여타단체들과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가대에서 ’신부님 이러이러한 것을 해주세요’ 하고 부탁드리면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다른단체와의 형평성 때문에 어렵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계시고 성가대의 특성상 타 단체보다 예산을 많이 책정하기 마련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미 성가대는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성가대라는 것이 여타 본당의 단체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성가대는 전문화된 기술을 연마하는 단체라는 것입니다.
제대로된 합창음악을 아무나 갑자기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신앙심만 있다고 될 일은 아니지요. 그들은 매주 모여서 연습하고 연마하면서 실력을 쌓는 것이지요.
전문가들을 양성하는데 자금과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첫째 성가대를 운영하려면 제대로된 기술을 갖고 있는 지휘자, 반주자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둘째 성가대를 운영하려면 악보비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모 성당에서 신부님께 악보비를 부탁드렸더니 성당에 있는 복사기를 사용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이 악보라는 것이 짧은 곡이야 1쪽, 2쪽 짜리도 있지만 긴것은 몇십쪽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단원분들이 자기 시간 쪼게가며 열심히 성당 복사기를 돌리자 이제는 성당복사기가 성가대 때문에 금방 망가진다는 원성이 들려오더군요. 더구나 이렇게 함부로 악보를 복사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아무 악보나 함부로 복사하는 것은 잘못하면 저작권법 위반에 걸린답니다." 예전에 모출판사에서 모교회 성가대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해서 벌금을 문 적이 있답니다.
셋째 결속력 있는 성가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습이외에 여러가지 행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른 단체들이야 모임때마다 서로 얼굴 마주보며 기도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운영방법이지만 성가대는 언제나 지휘자얼굴만 보게 됩니다. 단원들끼리 얼굴 마주보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심할경우는 몇년동안 같이 성가대 활동을 하고도 서로 같은 성가대원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종종 사제분들께 듣는 말이 ’어느 성당이나 성가대가 가장 시끄러운 단체다’라는 소리입니다. 이는 이 세번째 부분의 지원이 없었거나 아니면 성가대원들이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연습끝나고 아는 사람끼리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하다보면 당연히 서로 오해의 소지가 싹트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단장님께 항상 단체로 노는 행사를 많이 마련하시라고 주문 합니다. 또 연습시간중 쉬는 시간을 꼭 갖게하며 연습이 끝나면 할 말씀이 없더라도 언제나 단장님이 공지를 하고 마침기도를 하시도록 주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중 혹 성가대 단원이신 분이 있다면 단원분들의 이름 또는 본명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지요? 가끔 연말 결산에서 사제분들이나 사목위원께서 ’성가대는 놀기만 한다’ 라는 말씀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성가대의 특성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결과라 생각됩니다.
이런 성가대의 특성때문에 신부님이 바뀌고 본당의 사목방침이 바뀌면 가장 커다란 타격을 받는 단체는 언제나 성가대가 됩니다. 또 지휘자 입장에서는 장기간의 계획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커리큘럼은 1년 안쪽으로 짜여져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때 가톨릭 음악계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이 지속성이 없다는 것 때문일 것 같습니다.
2. 지금의 가톨릭 음악계는?
제작년, 작년 제가 눈여겨 본 경연대회가 있습니다. PBC평화방송에서 주최하는 ’창작 생활성가 경연대회’(제목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입니다. 입상자는 꽤 많은 상금과 방송출연, 음반제작의 기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얼마전에는 유급생활성가 가수를 모집하는 공고를 어디에서 본 것 같습니다. 약10년전부터 생활성가의 인기가 엄청나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개신교의 복음성가를 가져다가 부르는데 그쳤지만 이제는 제법 우리의 생활성가도 꽤 많이 작곡되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개신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저는 이 생활성가의 발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급히 먹는 음식은 체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생활성가 발전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개신교의 유명 복음성가 가수들중 많은 분들이 성악인 출신입니다. 또 작곡된 복음성가중 많은 곡들이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분들의 곡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떨까요? 우선 누차 말씀 드리지만 음악전공자들 중 가톨릭인들을 찾기란 꽤 어렵습니다. 우리 생활성가 작곡가들과 가수들의 대부분은 혼자 연마하고 연습한 분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의 실력을 평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생활성가인들 중에서도 매우 훌륭한 실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볼때 어떤 쪽이 더 발전가능성이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그 해답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둘째로 생활성가와 클래식 성가의 조화가 이루어 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공급이 있으려면 수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경재 논리이지요.
생활성가가 많이 공급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용할때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 타계책으로 생긴게 지금의 중.고등부 미사, 청년미사 인것 같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성당의 중.고등부 미사가 생활성가로 봉헌되고 있으며 최근들어 청년미사역시 생활성가가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룹사운드가 조직되기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 문제일까요? ’생활성가가 미사때 부르기는 알맞지 않다.’ 이런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이미 그것이 대세이니까요. 우선 근본적인 접근부터 해 보겠습니다. 음악인들 중에 가톨릭인들이 없다. 이것은 모두가 인정한 부분입니다. 왜 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며 가장 큰 문제야 물론 가톨릭에서 음악인이 할일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음악대학 진학을 원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면 절대로 중.고등부 성가대에 들지 않습니다. 생활성가 부르는 성가대에서 클래식 공부를 하기에는 부적절 하니까요.
저는 중학교때부터 성가대 활동을 했으며 제가 음악을 전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역시 이 성가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마 저같은 이유로 음악공부를 하게되는 학생은 드물것 같습니다.
또 중.고등학교때 성가대 활동을 하고 청년성가대 활동을 한 이들이 성인성가대에 들어왔을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려서 부터 쭉 생활성가를 배우던 이들이 성인성가대에서 발성부터 다른 클래식 성가를 과연 소화하기가 쉬울까요?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음악은 지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청년성가대 이후 성인성가대에서 그 지속성이 단절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부분은 한 10년 후면 우리 가톨릭 음악계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생활성가는 클래식성가를 바탕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음악정책을 세우는 분들은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분명 지금의 가톨릭 음악은 기형적인 형태입니다. 초등학교때에는 클래식 성가를, 중학교, 고등학교, 청년시절에는 생활성가를 , 성인이 되어서는 다시 클래식 성가를... 음악은 결코 이런 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들의 강점은 교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클래식 전문 성가대도 있고 생활성가 전문 성가대도 있고 생활성가 중심의 예배가 있고 클래식 성가중심 예배가 있고...
3.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음악인들은 봉사자들이 아닌 직업인으로 대우해야 한다.
유급단원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유급단원을 두는 문제는 제가 보기에 게시판의 글 올린분들의 대부분이 찬성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약 ’교회는 모든 중심 성가대에 각 파트에 1명씩 음악을 전공한 유급단원을 둔다!’ 라는 교구청 방침이 발표되었다고 생각합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음악을 전공한 지휘자 구하기도 힘든게 현실입니다. 하물며 각 파트에 한명씩 둘만큼 가톨릭인 음악 전공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가톨릭 음악인들이 귀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음악을 전공하려면 꽤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들은 그 비용의 조금이라도 충당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오면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음악인들이 할 아르바이트가 없습니다. 당연히 천주교인이라도 개신교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개신교로 개종하는 이들 까지 생기게 되지요.
실예로 예전에 제가 지휘하던 청년성가대원중 두명이 성악을 전공한 이들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개신교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명은 목사사모님이 되었다더군요.
졸업을하고 나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 유급지휘자를 둔 성당이 많아 졌지만 아직 보수에서 개신교에 미치지 못합니다. 더구나 가톨릭 성가대 지휘를 하자면 앞에서 말했듯이 5녀에 한번 또는 1년에 한번씩 짤릴 각오를 해야 하지요.
그나마 성악이나 작곡을 전공한 이들은 나은 편입니다. 지휘자리라도 구할 수 있으니까요. 기악전공자들은 거의 할일이 없습니다. 가톨릭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주 특별한때 1년에 1~2회정도 특주를 하는게 전부일 겁니다.
그동안 우리 가톨릭 교회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계가 이렇게 뒷걸음질 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보편적’이라는 단어의 오해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가는 누구나 쉽게,그리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좋은 얘기 입니다. 많은 사제분들과 신자분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가책에 있는 노래들을 쉽게만들고 기본적으로 미사의 모든 성가는 신자분들과 함께 불러야 합니다. 심한 경우는 성가대에서 특송이라도 할라 치면 성가대를 위한 미사냐? 신자들도 함께 참여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씀을 하기도 하지요. 실제로 모 성당에 간적이 있는데 성가대에서 특송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원장수녀님이 혼자 투덜대시더라구요. ’성가대는 지들 발표회 하는데 인줄 알어...’ 얼마나 황당했던지... 그런 수녀님이 제가 있는 성당에 절대로 오시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도 들어 주실려나? ^^)
이런생각 한번 해 보셨나요? 가톨릭 신자들은 참 성가 안부르신다. 혹시 옆사람이 듣기라도 할까봐 입안에서 조용조용.... 아무리 ’보편적’인 성가면 뭐 합니까. 부르지를 않는데.
음악은 듣는것 부터 시작입니다. 많이 듣고 감상하고 감동하고... 그리고 나면 부르고 싶어 집니다. 이것이 음악이 기본입니다. 어려서 좋은 음악을 항상 듣고 자란 아이는 커서 절대로 음치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듣는 것을 않하려 합니다. 부르는 것만 할려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부르는 것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가대에서 우렁차고 화려한 성가가 불러지고 그 음악을 들은 신자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감동받은 신자들은 노래가 끝나면 ’아멘!’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미사때 박수를 치는 것은 좋지 않다지만 감동받았으니까... ^^) (개신교 예배때에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러면 그 감흥으로 자신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집니다. 힘차게...
이런것 아닐까요
그리고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음악은 자신이 직접 부르는 것만이 함께하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것 역시 그 음악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가가 보다 보편적이기 위해서는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가가 많이 만들어지고 연주되고 그 바탕위에 함께 부르는 성가가 발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음악인들이 교회내에서 자신의 삶을 꾸러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음악을 전공한 이들은 교회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음악인들을 양성하고 직업을 주어야 합니다.
전문 성가대가 만들어지고 작곡인들을 지원하고 가톨릭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지휘자, 반주자 역시 전문인들로 교육시키고 라이센스를 발급해서 직원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음악전공자들 중 오히려 가톨릭 인으로 개종하려는 이들이 생기게 될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클래식계는 매우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을 격고 있습니다. 매년 너무 많은 음악인들이 탄생하고 있고 또 그들의 양성을 위해 수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 할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주 세계적인 음악가가 아닌 이상에야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연주할 기회도 없을 뿐 더러 설령 연주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관객이 없습니다.
외국유학을 하고 들어오면 주위의 아는 사람들 모두 불러모아 자비를 들여 독주회를 열고 그리고는 대학의 강사자리를 알아보고...
이것이 거의 공식이지요.
그것은 사회의 아주 일부분의 현상인데 왜 교회가 신경쓰냐? 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신경쓰지 않더라도 교회가 음악을 양성하면 동시에 사회문제의 일부분도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만큼의 클래식 음악에 접합니까?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은 음악인일 것(전공을 했든 안했든)입니다.
그러면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하루에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얼만큼 일까요? 기껏해야 광고에 잠깐 깔리는 음악이 전부가 아닐까요?
음악은 중독성이 있기때문에 자꾸 들을 수록 좋아지게 됩니다. 우리가 클래식음악을 가장 많이 접하는 곳은 교회 입니다. 교회의 모든 음악이 클래식 음악이니까요. 나라에서 아무리 많은 음악회를 기획하고 연주회를 해 보았자 관심있는 극 소수(클래식 음악에 중독된)외에는 오지 않습니다.
이제 교회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클래식 음악이 싫든 좋든 신자분들은 주일이면 교회에 와야 하고 성가를 듣고 불러야 합니다. 우리 가톨릭의 적극적인 교회음악의 지원은 곧 우리나라 음악의 발전을 꽤 할 것이고 살찌울 것입니다.
(아!! 꿈이려나....~~~) PS : 위에서 제가 말한 클래식 음악이란 한국의 고전음악을 포함합니다. 교회음악 토착화를 위한 한국음악 전문인들의 지원 발전역시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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